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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식 노명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1798년7월21일 나폴레옹」의 「이집트」원정군은「카이로」교외의 「임바바」에서 「이집트」의 「맘루크」왕 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 결전장에서 군사행동을 개시하기 직전에 「나폴레옹」이 휘하 장병에게 행한 격려의 말은 엉뚱하게도 4천년의 역사가 「피라미드」에서 자기들을 굽어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은 이 말이 무식한 사병들에게도 어떠한 반응을 일으킬 것인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의 군대는 「바스티유」감옥을 함락시킨 지 만9년, 국왕 「루이」16세의 목을 자르고 공화정을 실시한지 만 6년을 경험한 공화국의 혁명군이었다. 자유와 평등의 민주의식이 몸에 배어있는 국민 국가의 시민 군이었다. 뿐만 아니라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썩어빠진 전제군주들을 무너뜨리고 새 민주체제를 수립한 해방군이었다.
그들은 4천년의 역사가「피라미드」에서 자기들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역사의식에 각성한 군대였다. 4천년 전의 「피라미드」가 4천년전의 사실을 그대로 자기들에게 말하고있듯이 그 「피라미드」밑에서 싸우는 자기들의 행동도 그대로 4천년 후에까지 전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들은 총칼의 물리적인 힘보다 더 큰 힘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무식한 군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프랑스」혁명의 아들들이었다.
역사의식이란 지금 여기에 있는 내가 길고 긴 과거의 역사에 이어져있고 또 멀고 먼 미래의 역사에 이어져 있다는 의식이다. 이 의식은 길고 긴 과거가 어떤 모양으로 내 현재에 와 닿고있고 내 짧은 인생이 어떻게 유구한, 미래에 이어져 있는가를 깊이 통찰하는데서 생기는 의식이다. 이 의식은 우리의 두발을 어제와 내일에 이어져있는 오늘에 서서 걸어가게 한다.
그러고 오늘 여기서 우리가 하는 일이 즐거운 일이건 괴로운 일이건 그것이 역사적 정통성을 지니고 있는가 없는가를 분별하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지금 이 한국 땅에서, 이 서울장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3천7백만의 한국국민만이 아니라 40억의 세계인류가, 그리고 여러 천년의 우리민족사와 세계사가. 그리고 또 오고 오는 억만의 후대가 한치의 에누리도 없이 엄준 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항상 깊이 자각하게 한다.
이러한 역사의식이「임바바」의 결전강장에「맘루크」군에 대치하고있던「프랑스」군 장병에게는 있었다. 그러나「맘루크」군 장병에게는 그러한 의식이 없었다. 「피라미드」는 그들의 조상들의 산물이건만, 그 「피라미드」가 4천년 역사의 눈으로 자기들의 전투를 굽어 보고있다는 의식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이 두 종류의 군대 사이에 막 벌어질 전투의 승부는 이미 결정지어져 있었다. 이튿날 「카이로」는「나폴레옹」의 수중에 들어갔다.

<성균관대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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