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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계 적응능력 있을지… | 무리한 「충격요법」이 가져올 후유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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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 여건이 유동적이고 전망이 불투명한 시기에는 여간한 확신이 서지 않는 한 경제를 보수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순리에 맞다. 과거 어느 경제「팀」보다 순리를 강조해온 현 내각이「1·12」이후 충격적인 정책결정을 잇달아 내린 것은 적어도 지금의 내외여건으로 보아 순리에 맞지 않는다. 충격요법은 정책의지와 효과전망이 보다 뚜렷하고 확신이 설 때라야 가능하다.
현 경제「팀」은 그런 정책의지를 빚어내기에 너무 일천할 뿐더러 정책효과를 전망하는데서 조차 뚜렷한 합의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또 불과 몇 일 사이에 40여 개 품목의 가격인상 작업을 해치운 기동성은 놀랍지만 그런 무더기 인상 속에서 불공평과 졸속은 없었는지 우려된다.
이한빈 부총리 스스로도 『올해는 헌정대도의 기반을 닦는 해이므로 경제가 정치발전에 장애가 되거나 충격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취임이후 거듭 강조해 왔다. 그런 그가 어떤 계기로 소신을 바꾸고 충격요법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유가인상 후 그가 밝힌 대로 『깊이 병든 경제를 수술』할 필요성이 없지는 않았으나 문제는 환자의 병세가 수술에 적합한가 하는 점이다.
정책입안자들의 기본구상은 국제수지의 한계를 환율로 뛰어 넘고 그로 인한 광범한 「인플레」효과는 금리인상을 주축으로 한 긴축으로 대응하며, 고 유가의 파급은 그때그때 대증요법으로 적응해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인 듯 하다.
지난 20여 년간의 과도한 주행으로 군데군데 고장이 나고 「인플레」 열기에서 헤어나지 못한 우리의 경제체질은 어떻든 구조전환이 불가피한 상태였으나 환율실세화·금리현실화라는 충격적 정책전환을 동시에 대폭으로 실현함으로써 재정·기업·가계운영의 적응시간을 빼앗게된 부작용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우선 재정부터도 그렇지만 기업·가계 모두 오래된 「인플레」체질과 높은 「인플레」 예상율을 바탕에 깔고 있어 정상가격기구에 적응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시장조직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
1·12에 잇따른 일련의 조치가 예상 밖의 충격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소지가 바로 이런데 있다.
기업이 고금리체제에 적응하려 해도, 가계가 「인플레」와 긴축의 고통을 받아들이는데도 최소한의 시간여유와 완충장치가 필요하다.
특히 지난해 이후 우리 경제는 수출·내수를 포함하여 초과수요가 현저히 줄고 정부·민간투자도 크게 감퇴, 불황이 심화되는 국면에 들어있다. 특히 원유가의 지속적 상승과 「에너지」수급 불안정이 겹쳐 올해 실질투자는 「마이너스」로 예상된다. 원유가 인상으로 GNP의 5%를 해외에 누출시키면서 긴축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게된 정책환경이 문제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경제구조 전환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보다 적응하기 쉬운 단계적 방안을 권고한 바탕도 그런데 있었다. 이런 현실을 정책 전문가들이 충분히 알면서도 일거에 해치운 것은 아무래도 한번에 욕먹고 말자는 관료적 편의주의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 안이한 발상의 피해는 가늠할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긴축의 실효는 모두 경제주체들의 단합된 노력으로 거두어지는데 이미 큰 몫을 차지하는 기업들이 체질개선의 고통과 불이익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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