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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2727)-영화60년(제67화)(27)안종화씨/『해의 비곡』서 이월화와 공연해 데뷔/성격원만해 총독부서 영협회장 임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내가 결혼하고 신혼생활을 시작할 즈음, 평소 영화연출을 꿈꾸던 안석채이 감독으로「데뷔」했다. 당시 외국영화수입회사인 기신양행을 경영하던 이기세가『심청전』을 제작했는데, 여기에 안석영을 감독으로 등용시킨 것이다. 그는 조선일보 학예부장으로 있으면서 감독을 겸해『심청전』에 심혈을 기울였다.『심청전』연출로 그의 소망은 이루어진 셈이었다.
안석영은 다방면에 재능이뛰어났고 미술에도 대단한 솜씨를 갖고 있었다. 조선일보에 연재되는 소설, 그 가운데서도 춘원 이광수, 월탄 박종화의 소설삽화는 그가맡아놓고 그렸다.
미적감각이 예민했던 그는 영상미를 십분 살려『심청전』을 아주 우수한 예술작품으로 완성시켰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군더더기 하나 없는 가작이었다. 이 영화는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 그는 연출자로서도 역량을 과시했다. 이럴즈음, 1940년 총독부는「오까다」(강전)란 현직 경찰간부를 활동사진 검열주임으로 새로 앉히고『활동사진영화취제규칙』이란 걸 새로 제정했다. 이 새영화법은 과거의 영화검열 규칙보다 더욱 강학된 것으로 두말할 나위없이 한국 영화의 숨통을 죄기 위한 것이었다. 총독부는 이 규칙을 만들면서 또「조선영화인협회」란 것을새로 만들어 그 회장에 안진화를 앉혔다. 안진화가 회장이된 것은 순전히 그의 온화한성격 때문이었다.
그는 온화하고 내성적인데다가 모가 나지 않는 무난한 인격자였다. 총독부가 그의 이러한 성격을 이용한 것이었다.
여기서 잠깐 안진화의 얘기를 곁들여야겠다. 이런「에피소드」는 그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기 때문이다.
그는 연극배우 출신이다. 1924년 일본인 실업가 몇명이 부산에 조선「키네마」란 영화사를 설립해 첫작품으로『해의 비곡』이란 영화를 제작했다. 그는 이때 여배우 이월화와 함께 출연, 처음으로 영화에「데뷔」했다.
25년엔 역시 같은 회사 작품『압의 장』이란 영화에 여배우 이채전과 주연했고 30년『꽃장사』란 영화의 각본·감독을 맡으며 감독으로「데뷔」했다. 그뒤로 30년의『노래하는 시절』, 34년의『청춘의 십자로』, 35년의『은하에 흐르는 정열』, 36년의『역습』, 37년의『인생항로』등을 각본·감독하면서 연출자로서의 역량을 과시했다. 이 영화들은 모두 예술작품으르서는 물론,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이미 얘기했듯이 우리「음주클럽」의「멤버」.
한번은 내가 안석영의 집 사랑에서 그와 얘기하고 있는데 안종화가 들어섰다. 안종화와안석영은 제일 친한 사이여서 안석영의 부인도 안종화를 잘알고 있었다. 반가운 손님이왔으니 안석영의 부인은 술상을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안석영의 집이 넉넉한편이 못되어 부인은 급히 물건을저당잡혀 술상을 차리게 됐다.
부인은 정성을 다해 육류·생선등을굽고 찌개를 만들었다. 솜씨를 한껏 자랑하느라 파·마늘·고춧가루등 갖은 양념을 듬뿍 넣어 아주 먹음직스레 안주를 마련했다.
얼마뒤 부인이 다소곳이 술상을 들고 들어서는데, 김이 무럭무럭나며 아주 푸짐한 술상이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술상을 힐끗 본 안중화가 술잔을 돌리기도 전에 부스스일어서더니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슬그머니 나가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돌아올줄 몰랐다. 그가 벗어놓은 모자는 그대로 벽에걸려있고 안석영과 나사이에술잔이 몇순배 돌았는데도 그는 종래 감감 소식이었다.
그때서야 우리는 안종화가 왜 뺑소니쳤는가를 알고 박장대소했다. 그가 파·마늘·고CNT가루등 양념든 음식을 못먹는다는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안석영의 부인이 이런 그의 식성을 알리가 없었다). 근데 이렇게 융통성이 없었다. 설사 양념든 음식을 못먹는다 하더라도 부인의 정성을 감안해 조금 먹는 흉내라도 내야 했을터인데, 그런 융통성이 없을만큼 성격이 단순하고 순수했다.
가끔 요정에 가면 옆자리에 마음에 드는 기생이 있어도 감히손 댈 엄두를 못냈다. 내가 슬쩍손이라도 잡아주면 그때서야 그손을 술 자리가 파할 때까지 놓지못하고 쥐고 있었다.
며칠뒤 안종화를 만나『왜 뺑소니 쳤느냐』고야단(?)쳤더니 그는『글쎄』하며 끝내 말 한마디 못하고 쑥스러운 웃음만 계속지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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