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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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후한 말의 석학 순열이 펴낸 『신감』속에 『나라의 중환에는 네 가지가 있다』는 사환론이 들어있다.
사환중의 두 번째는 「사」다.
국가·사회라는 공을 잊고 모두가 사리사욕에 흐른다. 특히 위정자 층의 경우를 말한다.
세 번째가 「방」.
사람들이 방종에 흘러 질서를 저버리고 법률을 무시하게 되는 병을 말한다.
네 번째가 「사」.
사람들이 사치에 흐르고 소비풍조 속에서 얼을 빠뜨린다. 그것은 단순히 경제를 망쳐놓을 뿐 아니라 정신적인 쇠퇴를 가져오는 중병이다. 순열이 가장 큰 병으로 여기고 제일 먼저 꼽은 것은 「위」였다.
나라 정치에 거짓이 많아지고 법을 위장한 불법이 성행되고 불공정한 재판이 양민들을 괴롭히게 되는 병을 말한다.
한편 청조 말에 영국과 맞서 아편전쟁을 일으킨 증국번은 난세의 전조를 세 가지 들고 있다.
첫째는 법이 어지러워지고 재판이 공평하지 않아 만사에 흑백을 가리기 어려워지는 것.
둘째는 이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이 더욱 몸조심을 하느라고 매사에 꼬리를 빼고 시원찮은 무리들이 더욱 활개펴는 것.
셋째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의 무사제일주의에 상하가 모두 휩쓸리게 되는 것이다.
순열이나 증국번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법의 올바른 운영이었다.
법은 시대를 따라 더욱 번거로워지고 까다로워진다. 나라살림이 커짐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보다도 보다 공정하게 나라를 다스리고 사람을 이끌자는 뜻에서라고 보는 게 더 옳다.
그러나 「법삼장」만이 유일한 법이나 다름없던 한태조 때보다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법이 제정된 현대사회에서 법의 공정이 더욱 잘 지켜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에 시누이 남편을 살해하려 했다는 끔찍스런 누명을 쓰고 구속됐던 한 부인이 무혐의로 풀려 나온 것이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모든 상황은 그녀에게 불리했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경찰의 편파적 수사결과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에 남편의 끈질긴 호소가 없었다면? 그리고 검찰 쪽에서 경찰 쪽 수사결과를 백지화시키고 철저한 재수사를 하지 않았다면?
그랬더라면 그녀는 「독부」의 올가미를 벗어나지는 못 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법은 돌이킬 수 없는 불법을 저지르게 되는 셈이었다.
법은 어디까지나 공정이 지켜질 때에만 그 존엄성을 간직하게 된다. 또 그래야만 준법의 정신도 키워진다.
이래서 모든 재판이 중요해진다. 어떠한 피고라도 충분한 항변의 기회가 주어지고 공정한 재판의 자리가 마련될 때 비로소 우리는 「사환」의 우려도 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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