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보 공유 民-官 '온도차'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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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환자 의료 정보 공유의 초석이 될 ‘표준 플랫폼’ 개발에 첫 발을 땠다. 향후 국내 전체 병원까지 진료 정보 공유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병원계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기만 하다.

과잉 진료비 7조…의료 정보 공유에 정부 나선다

15일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미래부 등은 올해 ‘근로복지공단병원 대상 의료시스템 혁신 시범사업’을 통해 근로복지공단병원 2곳(안산·인천)과 산재지정병원 6곳에 의료정보교류 표준 플랫폼을 마련한다.

사업에는 2016년까지 모두 15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며 고용부, 산자부,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 협업 형태로 진행된다. 내년에는 대구와 경북권의 200여개 지정병원·6개 근로복지공단병원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2016년까지 수도권까지 500여개의 병원으로 이를 늘린다는 구상이다.

병원마다 컴퓨터 시스템이나 웹에 환자 정보를 기록해 이용하고는 있지만, 저마다 진료 정보 표기법이나 검사 기록 기준이 달라 다른 병원에서는 활용할 수가 없는데 이를 통합한다는 것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지금은 각 병원간 시스템 구축환경이 서로 상이하고, 용어나 서식 등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다른 의료기관과의 진료협력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표준 플랫폼이 완성되면 환자의 동의하에 환자기본정보, 진단내역, 투약내역, 검사내역, 예방접종, 수술정보, 알러지 및 부작용 등 진료와 처치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가 의료진과 기관 사이에서 공유될 수 있다. 병원을 옮겨도 환자가 초기 검진을 다시 받지 않아도 되고, 의무기록사본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 응급상황에서도 보다 발 빠른 대처가 가능해진다.

▲ 정부가 의료정보 공유를 위한 첫 발을 땐다. 의료정보 공유는 과잉약물 처방이나 중복 진료를 피할 수 있고, 응급 환자에 대한 신속한 처리도 가능케 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중앙일보 db>

추가로 중복진료와 과잉약물 처치, CT나 X레이 등의 재촬영에 드는 수 조원의 의료비 낭비분을 줄일 수 있다는 게 미래부의 설명. 실제로 이 시스템이 근로복지공단 10개 병원 및 5500여개 산재지정병원으로 확대될 경우, 연간 약 141억원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시범 사업을 통해 한국보건의료표준용어나 정보교류 항목, 상호 운용성 등의 기술력을 확보한 후 최종적으로 전국 병원에 플랫폼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시범 사업을 거쳐 표준 플랫폼을 의료기관이나 기업 등에 무상으로 기술이전 하는 한편, 보안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공급해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의료정보 공유를 통해 의료비 절감과 환자 편의 도모 등 다양한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라며 “병원 간 정보교류는 물론 나아가 개인이 집에서도 자신이 착용하는 건강 측정기기와 연동되는 등 다양한 시스템으로 구성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표준 체계 병원 적용이 관건

이미 의료정보 공유 시스템은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구축돼있다. 대표적인게 서울아산병원의 ‘진료의뢰시스템’, 삼성서울병원의 ‘인터넷의뢰시스템’, 아주대병원의 ‘협력병원지원 시스템’, 분당서울대병원의 ‘CDA 기반의 온라인 진료정보 교류시스템’ 등이다.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협력병원이나 지역 내 1차 병원에서 받는 환자의 정보를 웹과 운영시스템을 통해 선택적으로 공유하는 방식이다.

병원계는 표준 플랫폼 구축과 의료정보 공유에 다소 시큰둥한 반응이다. 병원마다 구축된 플랫폼이 달라 병원간의 정보 공유는 어렵지만, 실질적인 수요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게 병원계의 관측. 우리나라는 의원급인 1차 병원에서 대형 병원인 3차 병원으로 수직적 병원 이송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대형병원까지 오는 환자의 경우 다른 병원과 의료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 상황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진료가 어렵다고 삼성서울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는 일이 많겠느냐”고 반문했다.

<중앙일보 db>

또 아직 의료정보 공유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고, 구축은 물론 보안 문제 해결이나 서버의 유지 관리 등에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각 병원의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초기 검사 항목이 줄면 그 만큼 병원 수익에 악영향을 미치는데다, 환자의 선택권이 커지게 되면서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이 심화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정부는 2005년부터 범 국가차원의 진료정보 표준체계 마련을 시도했으나 예산 부족과 부처 간 협력 부족 등으로 번번이 실패한 경험이 있다. 시범사업을 통해 미리 문제를 점검하겠다는 생각이지만, 병원계의 이해가 없이 ‘밀어붙이기 식’ 사업이 진행될 경우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부 관계자는 “시범사업 기간 중에 개인정보를 포함한 관련법 정비 방안을 수립하고, 보험 수가를 조정하는 등 정책 분야의 반영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며 “단계적으로 표준 플랫폼을 확장해 가면서 의료계의 전반적 확산을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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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 기자 life@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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