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 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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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올해의 「장한 어머니」로 뽑힌 김옥분할머니의 가슴에 지금 무엇이 오가고 있는지 우리는 헤아리기어렵다.
『고맙습니다』하고- 수상소감을 말했다지만, 할머니의 한이 풀린것같지는 않다.
꼬박 19년동안이었다. 아들을 따라 교도소앞에 셋방을 얻어 떡장수와 과실장수로 끼니를 이어가면서 매주일 아들을 면회하였단다.
이것만도 보통일은 아니다. 할머니는 절망에 빠진 아들에게 삶에의 집념을 되찾아주기위해 그림을 배우도록 했다.
드디어 어머니는 무기수 아들을 「교화」시켜 어엿한 국전 입선작가 황찬길씨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아들은 특별히 「교化」를 받아야만 할 흉악범은 아니었다. 황씨는 중학2년때 종군한 학도병이었다.
그의 죄목은 휴가증의 날짜를 변조하다 잡힌 것뿐이었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죄과였을 것이다. 간신히 얻은 휴가로 귀향한 그를 기다리고있던 것은 병상의 어머니와 굶주림에 허기진 어린 누이 동생.
차마 발걸음이 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더우기 그때의 그는 아직 분별이 없는 어린 나이였다. 그저 6·25가 유죄였을 뿐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를 판단하는 일이다…. 그것은 때로는사람을 자살로 몰아넣을지도 모르는 문제며, 때로는 반대로 삶의 정열을 10배로 늘려 줄지도 모르는 문제』다.
이렇게「카뮤」가 말한적이 있다.
김옥분할머니에게는 단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할머니로서는 목숨을 맞바꿔도 시원찮았을 것이다.
더우기 할머니에겐 다시 없이 착한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무슨 끔찍한 죄를 저질렀다고?
법에는 눈물도 피도 없단 말이냐!
이런 노여움과 원망이 그녀의 삶을 지금까지 지탱해 주었을 것이다. 무슨일이 있어도 아들을 절망과 저주의 구렁덩이로부더 건져내야했을 것이다.
이런 집념이 그녀의 19년에 걸친 삶의 전부였다. 그것은 어디를 향한 것인지도 모르는 피맺힌 항의나 다름없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하지만 황찬길씨의 오늘에는 단순한 어머니의 사랑만이 힘이 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76년에 가졌던 첫 작품전에서 8백만원이 걷히자 할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일렀다고 한다.
『이 돈은 네가 고생했던 것과 같은 고생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한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떠돌이로 전국의 교도소를 찾아다니고 있다.
올해의 「장한 어머니」 에게선 왠지 기쁨보다도 비통함을 더 느낀다. 너무나도 많은 고생을 할머니에게 시킨 죄를 도시 누구에게 돌려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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