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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변신은 새로운 탈출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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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호 28면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로쟈의 문학을 낳은 문학 <18> 고골의『코』 vs. 카프카의『변신』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서두의 하나인 『변신』의 첫 문장이다. 프란츠 카프카라는 이름을 독자에게 각인시켜 주는 작품이 『변신』이라면, 그 강렬한 인상의 상당 부분은 이 첫 문장에 기대고 있다. 마르케스조차도 대학 시절 하숙집에서 『변신』을 읽다가 깜짝 놀라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다고 고백할 정도다. 마르케스는 “이런 것을 쓰도록 허락받은 작가가 있다는 것을 몰랐구나”라고 생각했고, 그 즉시 단편을 쓰기 시작했다. 마르케스에게 글쓰기의 가능성을 열어 준 작품인 셈이다. 그런데 그와 유사하게 카프카에게도 글쓰기의 가능성을 열어 준 작가가 있다면? 바로 니콜라이 고골이다. 그의 대표 단편 『코』를 읽어 보자.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가 아침을 먹다가 빵 속에 사람의 코가 들어 있는 걸 발견하고 대경실색하는 첫 장면에 이어서, 두 번째 장면에서는 주인공 코발료프 소령이 아침에 눈을 뜨자 버릇대로 ‘부르르…’ 하는 소리를 낸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진다. “코발료프는 기지개를 켜고, 책상 위에 놓인 손거울을 집어들었다. 어제저녁에 콧등에 생긴 여드름이 어떻게 됐는지 보고 싶었다. 그런데 코가 있어야 할 장소가 아주 평평하지 않은가!” 그렇다, 코가 사라졌다! 세수를 하고 눈곱을 닦은 다음에 다시 보아도 코는 없었다. 그곳을 만져 보기도 하고 자신을 꼬집어 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꿈인 것 같지 않았다.” 꿈이 아니기에 이야기는 시작된다.

『변신』의 서두도 마찬가지다. 갑충으로 변신한 그레고르가 머리를 겨우 쳐들어 보니 “몸뚱이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들은 애처롭게 버둥거리며 그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대체 어찌된 일일까 생각해 보지만 꿈은 아니었다. 코발료프의 코가 사라진 일이나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한 일이 모두 ‘현실’이라는 게 문제다. 물론 믿을 수 없는 현실, 그로테스크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버젓이 소설의 공간으로 가져온 공로가 고골에게 있다면 카프카는 그 계승자이다. 카프카가 고골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친구 막스 브로트의 증언에 의하면 고골은 카프카가 가장 좋아한 작가 중 한 명이었다.

고골의 『코』에서 발상을 얻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변신』의 이야기는 『코』와 많이 다르다. 일단 두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서 차이가 난다. 8등관인 코발료프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으스대며 다니는 것과는 달리,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영업사원 그레고르는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아아, 세상에! 나는 어쩌다 이런 고달픈 직업을 택했단 말인가. 허구한 날 여행만 다녀야 하다니. 회사에 앉아 실제 업무를 보는 일보다 스트레스가 훨씬 더 심하다”는 게 그의 탄식이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가 직면해야 하는 현실이 악몽과 다를 바 없다면, 그에겐 어떤 탈출이 가능할까? 바로 동물-되기 혹은 벌레-되기로서의 ‘변신’이다.

가족을 부양해야만 한다는 책임감과 회사 일을 더는 견딜 수가 없다는 절망감은 서로 모순적이다. 그레고르로서는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고 계속 다닐 수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벌레로의 변신은 새로운 탈출구가 된다. 모든 변신은 욕망의 투사이다. 그레고르는 “6시 45분이야. 안 나갈 거니?”라고 재촉하는 가족이나 새벽 기차를 놓쳤다고 곧바로 집에까지 찾아온 지배인의 독촉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흉측한 갑충더러 어서 출근하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 변신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난다. 아들이자 오빠였지만 차츰 ‘벌레’로만 간주되면서 그레고르는 결국 가족에게서 소외되고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이렇게 계속 지낼 수는 없어요. 아버지 어머니께서 혹시 알아차리지 못하셨대도 저는 알아차렸어요. 저는 이 괴물 앞에서 내 오빠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겠어요. 그냥 우리는 이것에서 벗어나도록 애써 봐야 한다는 것만 말하겠어요. 우리는 이것을 돌보고, 참아내기 위해 사람으로서 할 도리는 다해 봤어요, 그 누구도 우리를 눈곱만큼이라도 비난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반면에 코발료프의 코 이야기는 코믹하게 마무리된다. 코가 사라졌다고 경찰서에 신고하고 신문사에도 찾아가지만, 코발료프의 코는 5등관 제복을 입고 길거리를 활보한다. “코는 커다란 깃을 세우고 금실로 수놓은 정복에 양가죽 바지를 입고, 허리에는 대검을 차고 있었다. 모자의 깃털 장식으로 보아 5등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마침내 코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잠에서 깨어 무심코 거울을 들여다보니 코가 있지 않은가! 손으로 코를 만져보았다. 틀림없는 코다!” 그러자 코발료프는 다시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다니면서 예쁜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진다. “코 역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얼굴 한가운데에 앉아 어디로 달아날 것 같은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코가 사회적 지위를 상징한다면, 코발료프는 5등관의 코를 갖고 싶었던 것이지만 8등관이라는 현재의 지위에도 기꺼이 만족한다. 지위 상승에 대한 그의 욕망은 언제라도 타협할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다.



필자 이현우는 서울대 대학원(노문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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