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맥락서 현대조각 탐구|정관모(조각가·성신여사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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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예술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작가들일 경우 이들이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 있든지 일반적으로 삶의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들이 어떠한 명분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맞이하는가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이 미국에서의 활동과 생활을 정리하고 73년 초 서슴없이 귀국하게 한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귀국후 개인적인 일 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일에까지 성의를 다하여 일할 수 있었던 것을 스스로 대견스럽게 생각한다. 많은 미술행사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고 특히 한국미술 청년작가회를 창립, 초대회장을 맡은이래 5년동안 연임하는 가운데 젊은작가들과 함께 벌였던 활동은 내 생을 통해 가장 보람있었던 미술운동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청년작가회가 그간에 쌓아온 수없이 많은 행사의 결과와 방향은 보여준 대로 살아남을 것이며 지나간 70년대의 한국미술사 속에서 긴 여운을 남길 것으로 자부하고 있다.
나는 추상표현주의의 범주로 볼 수 있는 형상과 이념의 추구로 70년대 초까지 「생의본질」을 즐겨 표현 해오다가 『무명작가를 위한 묘비』 『망부를 위한 식탁』 『골고다애비뉴』 은 「오브제」 성격의 구조물 시기를 거쳤고 70년대 후반에 와서 「기념비적인 윤목」 시기에 접어들었다. 운목이란 민속놀이에 사용된 주사위와 같은 작은 것에 불과한데 나는 이 운목의 구조적 단순성과 토속적 재질미에 흥미를 느꼈고 이것을 현대감각에 수용하여 형태의 극대화나 변주를 통한 현대조각으로서의 가능성을 찾았다.
다시말하면 전통속에 심준되어 있는 토착적 조형요소를 현대감각에 맞춰 한국적 현대조각을 창작코자 노력해왔던 것이다. 이것이「나의 나됨」 을 발견하는 첩경일 수 있었고 주체성의 확립일수도 있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존적 문학전통의 맥락에서만이 얻어갈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나는 국내외를 망라하여 개인전 9회, 단체전 1백7회에 출품했다. 무더운 여름날 푸르게 자라는 수목처럼 활력있는 성장과 활동이 있었던 감사의 70년대로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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