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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만델라·은크루마 … 아프리카를 일으킨 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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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003년 수단 다르푸르 내전 당시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이 지원하는 잔자위드(janjaweed) 민병대가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다. [사진 휴머니스트]

아프리카의 운명
마틴 메러디스 지음
이순희 옮김, 휴머니스트
1024쪽, 5만4000원

아프리카 대륙 최북단 국가 튀니지에서 최남단 국가 남아공까지 이동하는 여정은 지루했다.

 지난달 17일 오후 3시 30분(현지시간) 튀니스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지중해를 내려다보며 세 시간가량 비행한 끝에 막 어둠이 내린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튀니지에서 남아공까지 가는 직항이 없어 아시아 대륙으로 나와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이다. 공항 환승라운지에 갇혀 5시간 대기하고, 9시간 가까이 밤 비행을 한 끝에 다음날 오전 10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 공항 건물을 빠져 나오자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하는 동안 날짜뿐만 아니라 계절까지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아프리카는 광활하다. 그 대륙 안에는 54개 국가가 존재한다. 인구도 11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마틴 메러디스가 지은 『아프리카의 운명』(원제:The Fate of Africa)은 그 넓은 대륙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가 주목한 시기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립 전야부터다. 대략 1950년대 이후 아프리카의 현대사를 담고 있다.

 아프리카는 대단한 다양성을 지닌 대륙이지만, 오늘날 아프리카 국가들은 에티오피아 한 나라를 제외하면 식민지 보호령이라는 같은 기원에서 출발했고, 비슷한 장애물과 난관에 부딪혀왔다는 점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 국가의 역사가 아닌 아프리카의 ‘대륙사’라 할만하다.

 저자는 아프리카 대륙의 지도에 새겨진 상처를 이야기하는데서 출발한다. 자로 잰 듯 반듯하게 그려진 국경선이 그것이다. 지난해 초 사막전쟁을 치렀던 말리는 모래시계 모양을 하고 있다. 말리를 지배했던 프랑스가 독립과정에서 인종과 민족을 고려하지 않고 자로 국경선을 그은 탓이다. 그래서 말리는 서로 다른 민족이 한 나라를 이루게 됐고, 결국 그것이 북부와 남부지역의 전쟁으로 비화됐다. 2013년 말리 내전의 뿌리는 19세기말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인 셈이다. 당시 아프리카에서는 약 1만 개의 정치적 단위체가 아프리카인들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40개의 유럽 식민지와 보호령으로 재편됐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사람이다. 아프리카 각국의 독립영웅을 포함해 지금까지 현대 아프리카를 이끌어온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다. 가나의 독립영웅 은크루마에서부터 지난 연말 타계한 넬슨 만델라까지, 아프리카 현대사 주인공들의 행적이 각국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 과정을 세세하게 그리고 있다.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에서 어려움을 겪는 나라들이 많은 이유도 고찰한다. 저자가 내리는 결론 역시 ‘사람’이다. 소수 유능한 지도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독재자와 지배 엘리트 계층이 사욕을 채우는데 급급한 나머지 정부 운영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 마틴 메러디스는 원래 기자였다. 15년 동안 옵서버와 선데이 타임스 등에서 아프리카 특파원으로 검은 대륙을 누볐다. 책머리에 밝혔듯이 잠비아 타임스 기자를 시작으로 많은 전쟁과 혁명, 격변을 현장에서 체험했다. 기자가 현장에서 현대사를 쓰는 사람임을 이 책은 보여준다. 철저한 현장조사가 밑그림이 되고 있고, 책 말미에 덧붙인 50여 쪽 분량의 주석과 참고문헌에서도 그런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000쪽이 넘는 두께는 다소 부담스럽지만 이 책만은 면죄부를 주고 싶다. 35장에 걸쳐 아프리카 각국 얘기를 담았지만 아직 쓰지 못한 나라가 많다. 저자 나이가 일흔이 넘었어도 속편이 기다려진다.

박경덕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박경덕은

국제관계학 박사(아프리카 정치 전공). 중앙일보 파리특파원을 지냈고 2012년부터 포스코경영연구소에서 아프리카 지역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 『기회의 땅, 아프리카가 부른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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