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한국 남자의 국제경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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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2010년 봄에 나는 이집트를 여행 중이었다. 사회주의체제의 이슬람 국가는 여자 혼자 여행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그곳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카이로 시내 어둑한 카페에는 중년 이상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둘러앉아 물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여행객을 배려한 식당은 찾기 어려웠다. 다행히 미국계 피자가게 하나가 영업 중이어서 자주 그곳에서 휴식과 식사를 겸했다.

그곳 실내에 켜져 있는 텔레비전에서 어느 날 한국 드라마 ‘풀하우스’가 방영됐다. 성격 까칠한 남자 주인공이 그럼에도 여주인공을 일편단심 사랑하는 백마 탄 기사라는 내용이었다. 젊은 남녀가 데이트할 공간조차 마땅치 않은 그곳에서 드라마는 여성 관객에게 엄청난 환상을 심어 주겠구나 싶었다.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가』는 프로이트 논문 제목이다. 여자의 무의식 속 결핍감에 대한 고찰이며, 여자가 진실로 소망하는 것은 남근 권력이라고 제안한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논문은 남자의 욕망을 담고 있다.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 그것을 제공하고 남자가 원하는 것, 일상적 돌봄이나 섹스 같은 것을 돌려받고자 하는 남자의 무의식이 더 많이 내포된 듯 읽힌다.

 하지만 그 질문조차 서양 문화권의 것이고 우리나라 남자들은 오래도록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우리 세대는 여자에게도 개별적이고 주체적인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투쟁하듯 말해야 했다. 당연히 서양 문화권과 비교할 때 한국 남자들은 여성에게 어필하는 매력 측면에서 경쟁력이 약하다고 생각했다. 2001년 중국을 방문해 한 가정에 초대받았을 때 남편이 적극적으로 요리하는 광경을 보면서 우리나라 남자들은 중국 남자들과도 게임이 되지 않겠구나 싶었다. 물론 우리 세대까지의 이야기다.

 이제 한국 남자도 남성적 매력에서 국제경쟁력을 갖춰 가는 듯 보인다. 요즈음 젊은 남자들은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질문하면서 파트너의 욕구를 배려한다. 덜 권위적이어서 꽃미남 외모에 백치미를 자랑한다. 그중 한국 남자의 부가가치 향상에 결정적 도움을 준 것은 한류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한류 드라마가 소비되는 나라의 여성들이 한국 남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현상이 더 잦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프로이트도 ‘남자는 무엇을 원하는가’라고 질문하지 않았다. 여자의 욕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남자들의 노력이 그들에게 새로운 억압이 되지 않기를, 환상이 깨어진 자리에서 여자들이 냉혹한 현실과 잘 관계 맺기를 소망한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