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만에 끝낸 「제명」|「10·4파동」을 보는 정치부기자 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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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의장소리 속기사도 못 들어>
-김영삼 신민당총재를 제명한 「10·4파동」은 워낙 큰 일이라 뒷얘기도 많고 신기록도 많은 것 같다.
-야당총재를 징계한 것이 초유의 일이고 30년 헌정사에 국회가 스스로 의원을 제명한 것부터가 처음 있는 일이지.
-본회의의 법사위회부결정이 단 8초만에 끝났고, 법사위심사가 30초만에 끝난 것도 신기록 감이고.
-1백59명이 무기명비밀투표를 하는 대 걸린 시간이 불과 12분이니 한사람당 5초도 못 걸린 셈이군.
의장이 하는 말을 속기사조차 알아듣지 못했다니까….


-의원징계안을 불과 3시간동안에 보고발의-법사위심사-본회의 의결까지 해치운 것도 속결처리의 기록이지. 신기록을 모두 치면 여남은 가지나 돼.
-그건 그렇고 김 총재 징계가 구체적으로 거론된 것은 「뉴욕·타임즈」지 회견내용이 보도된 이후지.
-「9·8법원가처분결정」이 내려지고 9월10일 김 총재가 강경한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을 때부터 공기가 심상치 않았었지.
-당시 유정회는 기자회견이 있기 하루 전 회견문안을 입수해 검토했는데 민중선동을 통한 국가변란기도와 군에 대한 얘기까지 들어있어 긴장했다는 거야.

<누구도 제명까진 생각 못해>
-박준규 공화당 의장서리는 『떠나는 사람이 고별사에서 무슨 소리는 못하겠느냐』고 했고, 정부대변인이 반박성명을 낼 정도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어.
-하여간 「9·10회견」기사로 경계경보가 내려져 있는 가운데 「뉴욕·타임즈」지 회견이 뇌관구실을 했다고 정재호 유정회 대변인이 말하더군.
-김영광 의원이 유정회 간부회의에서 국회법상 징계동의시한을 지적해 징계동의안이 지난달 22일 제출될 때만 해도 설마 제명까지 갈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어.
징계안을 내는 것조차도 공화당은 처음에 회의적이었으니까.

<박-태의장, 「하루만」결정>
-처음부터 공화당은 소극적이었고 유정회가 적극적이었는데 두 의견이 합치된 것은 29일 박준규·태완선 양의장과 정부관계자가 만난 직후부터지. 공화당 당무회의 도중 박의장이 잠시 빠져나갔던 날인데 모처에서 정부측 고위관계인사와 만나 김 총재를 제명한다는 방침을 굳혔다는 거야.
-이때부터 10인 기획위가 구성되고 6인 실무위가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것 아냐. 10인위는 유정회주도로 해야한다는 뜻에서 공화4 (서상린·김용호·장영순·문태준 의원) 유정6 (최영희·이영근·이해원·김영광 의원 외 2명 등)으로 구성했다는 얘기더군.
-「아지트」를 영동의 Y「호텔」로 잡고 작업을 했고 오유방·구범모·박찬종·정재호·갈봉근·신광순 의원 등으로 구성된 실무위는 징계사유문안작업을 했다는 거야. 10인위는 북악「스카이웨이·호텔」을 본부로 썼다지.
-여당이 처음부터 4일 중에 다 해치울 생각은 아니었잖아.
-세가지 안이 있었어. 1안은 4·6·8의 3일장, 2안이 4·6의 2일장, 3안이 4일의 하루장인데 제3안이 채택된 거지.
-3일 밤 최종으로 박·태의장간에 「하루에 해치운다」는 방침을 정했다는 거야.

<"수훈갑은 서상린 위원장">
-5일이 추석인데다가 신문이 안 나온다는 것을 착안했다는 거지. 한꺼번에 얻어맞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거겠지.
-경비경찰 증원은 3일 밤 전재구 의장비서실장이 구자춘 내무장관과 손달용 치안본부장에게 전화로 요청했다는 것이 유력한 설이야.
-그래서 4일 상오 7시 3백명의 경찰병력이 국회에 투입됐고 정식요청서류는 상오 9시 국회경비대장을 통해 수교했다더군. 엄격히 말하면 그때부터가 경호권 발동으로 봐야하지만 의장실에서는 하오 3시부터라고 공식 발표했어.
-여당의원들은 3시간의 「작전」이 끝난 후 서로 『수고했다』고 했는데 그들 사이에서 수훈갑을 서상린 법사위원장으로 치더군. 유정회쪽의 최영희 총무·이해원 부총무·김영광 기획조정실차장. 공화당의 구범모 당무조정실장 및 의장실의 전재구 비서실장 등이 「공로상감」이란 얘기가 나돌아.
-여당의 작전이 치밀했던데 비해 야당은 본회의장 대책밖에 없었던 것 같아.

<스마일 비표단 동원경찰>
-어차피 66명이 막아봐야 한계가 있는 만큼 여당이 변칙·무리를 하도록 유도한다는 생각이었겠지.
-이번엔 동원된 경찰들이 「스마일」비표를 달고 있었던 것이 「아이러닉」하더군.
-YH사태때 하도 혼이 났기 때문에 이번엔 각별히 훈련을 시켰다는 거야. 아무리 의원이 때려도 대항을 말라고 했다더군. 『웃으면서 할 일만 하라』는 뜻으로 비표를 「스마일」로 했다지만 웃을 수 없는 사태에 「스마일」표지를 단 것이지.
-야당에서는 최형우·김동영 두 의원이 가장 용감했다는 평이야. 워낙 중과부적이긴 했지만 66명이나 되는 의원들이 과거보단 무력해 보였어.
-이번과 같은 불행한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하겠지. 박 의장말대로 여야의 정치역량부족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간단히 짚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도 큰 충격적인 사건이야.
-국민을 의식하는 정치가 이뤄지도록 여야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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