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미국 중동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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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캠프·데이비드」협정이 합의된지 13개월이 지났으나 포괄적 중동평화의 산파역을 자처했던「카터」 미행정부의 약속은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당초의 구상은 이 협정에 의해「이스라엘」과「이집트」두나라를 일체화시키고 그 바탕 위에서「팔레스타인」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하여 중동전역을 미국주도의 평화체제로 정착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의 사태진전은 미국의 이러한 횡상과는 전혀 맞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고있어 「카터」의 위신과 미국의「리더십」은 중대한 시련에 직면하게 되었다.
「캠프·데이비드」협정의 본래의 약속대로 한다면 말썽 많은「요르단」강 서안과「가자」지구의 경우 우선 5년간의 주민자치를 실시하고 그 후에 다시 협상을 벌여「최종지위」를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합의문은 일종의「열려진 끄트머리」를 가진 것으로, 앞으로의 협상여하에 따라서는 「팔레스타인」의 자치뿐 아니라 독립까지도 논의 못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협정이 체결된 직후「이스라엘」의 태도는 표변했다.
「요르단」강 서안과「가자」지구에 대한「이스라엘」의 영유권은 영구히 포기할 수 없으며,「이스라엘」이 허용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는「팔레스타인」주민의 자치일뿐 독립운운이란 협상「테이불」에서 거론조차 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리고 이 자치에 있어서도「팔례스타인」주민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당사자는 비PLO 현지 거주자들이지 PLO와는 절대로 대좌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는 자세다.
이러한 강경한 자세와 아울러「이스라엘」은「요르단」강 서안과「가자」지구에 대대적인 정착촌 건설을 재개하여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영유권협상의 여지를 사전에 아예 봉쇄해버리는 듯한 조치를 취했다.
이에「사우디아라비아」「시리아」「요르단」등 여타「아랍」국들은 미국의 중재노력을 갈수록 더 불신하게 되었고,「팔레스타인」의 완전한 주권확립이 성취되지 않는 한 석유무기화정책을 좀처럼 누그러뜨리지 않을 기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사우디아라비아」는「카터」대통령에게 하루 1백만「배럴」의 석유증산을 약속했으나 이것도「팔레스타인」문제에 임하는 미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서 언제든지 재고될 수 있다는 조건이 함축된 것이었다.
이런 까닭에 미국으로선 어떤 방식으로든 PLO 및「팔레스타인」의 요구를 협상과정에 반영시켜야할 현실적 필요에 직면해 있는 것이고,「유엔」총회에서의「밴스」국무장관의 연설은 바로 그러한 고충을 은연중 드러냈다 하겠다.
그러나「팔레스타인」의 완전 독립과 PLO인정을 주장하는「아랍」측 요구와, PLO부 인정 및 독립부용을 고집하는「이스라엘」측의 요구가 피차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현재의 극한대립에 비추어「팔레스타인」권리보장』이란「밴스」장관의 어정쩡한 말이 양측에 대해 과연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석유와「아랍」권 이탈방지를 위해 PLO의 협상참여를 주선할 것인가, 아니면 전통적인 유대인「로비」의 역력에 따라「배긴」수상의 집념을 방임함 것인가. 이것이 오늘날 미국이 당면한 어려운 선택의 기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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