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 삼운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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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독상품의「브랜드·이미지」는 아마 어느 나라도 따르지 못할 것이다. 「메이드·인·저머니」라면 벌써 신뢰의 상징처럼 되어있다.
근간 일본의 『통상백서』도 서독의 공업제품은 비가격경쟁력에선「세계최강」이라고지적하고 있다. 비가격경쟁력이란 판가조직·선전력·공급능력도 포함되지만 그 보다는 신제품의 개발능력·기술의 수준을 두고 하는 말이다.
「메이드·인·저머니」라는 원산지 국명은 유래가 있다. 오늘의「이미지」와는 반대로 한때는 조악품의 대명사였다.
독일은 1913년까지만 해도 남독관세동맹과 북독관세동맹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들이 비로소 통일「도이칠란트」관세동맹으로 묶여지면서 그 이름으로 수출되는 상품에「메이드·인·저머니」를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독일인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었다.
그 무렵 세계최강의 공업선진국인 영국은 자국의 제품과 혼동되지 않도륵 독일측에 원산지 국명을 반드시 밝히라고 요구했었다. 독일로서는 여간한 불명위가 아니었다.
그러나 독일인의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메이드·인·저머니」의 악명을 씻기 위해 영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고 한편 기업인들이 분발해 공업력의 육성에 피나는 노력을 경주했다.
첫쌔「파리」의 「에콜·플리테크니크」와 견줄만한 고등공업전문교를「다름슈타트」등 여러 도시에 세워 기능·기술교육을 본격화했다.
둘째 「마이스터」제를 확립, 그들의 책임감·개인적 양식을 존중해주는 기풍을 독일사회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했다.
세째로 조형적「센스」에 눈을 뜨게 했다. 일찌기 중세의「고딕」건축에서도 볼 수 있는 조형적 감각이 독일인의 피 속엔 남아 있었다.
이처럼 굳건한 직업교육제도는 기술력을 쌓게 하고, 그 결과는 오늘의「메이드·인·저머니」와 같은 성가를 만들어 낸 것이다.
기능교육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일화가 하나 있다. 한국의 기술자가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쪼개면, 일본인은 그것을 다시 두 갈래로 쪼개고, 독일인은 그것을 또 두갈래로 쪼개어 그 사이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이다.
우스개얘기지만 우리의 기분은 과히 좋지 않다.
그러나 근년의 한국 기능공들은 바로 그 일본과 독일인과의 기능경주에서 번번이 1등을 하고 있다. 요즘「에이레」의「코크」시에서 열린 세계기능「올림픽」에서도 다시금 종합1위를 차지했다. 3연패의 영광이다. 어제의 우리를 생각하면 실로 장하고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브라보- 한국기능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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