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두웠다″-극비 속에 진행된「신민당 가처분 결정」작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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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등잔 밑이 어두웠다』-.
신민당 가처분결정이 나던 8일 80여명의 내외 보도진들이 담당 재판부 (서울민사지법 합의16부) 의 행방을 쫓는 동안 재판장 조언 부장 등 3명의 담당판사들은 기자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던 조 부장 방 (704호) 에서 2m 채 안떨어진 복도 맞은편 방에서 결정문을 등사하고 있었다.
지난 1일 3차심문을 종결한 재판부가 결정문작성에 들어간 것은 7일 하오부터. 1주일동안 보도진들의 끈질긴 추적을 받은 조 부장은 이날 하오5시 합의16부 담당계장에게『내일 아침7시30분까지 사무실에 나와 대기하라』는 전화를 한 뒤 두 배석판사와 함께 S「호텔」로 갔다.
모두 집에는『특별한 일이 있어 못 들어간다』고 연락을 해놓았다.
10여권의 법률서적·수십장의 심문기복·각종 소명자료 및「메모」용지등과 밤새워 씨름을 벌인 재판부가 법원에 다시 나타난 것은 8일 상오7시20분.
모든 직원들이 아직 출근도 하지않은 시간에 법원에 도착한 기관부는 곧장 법원본관 7층 711호실로 들어갔다.
이미 711호실 안에는 타자기와 총무과 안에서 쓰던 등사기가 옮겨져있었고 결정문발표에 대한 계획까지 세워져 있었다.
조 부장은 결정문「타이핑」을 위해 전날 미리 전화해두었던 신청과 소속 K모 양만 방에 들어오게 한 뒤 출입문에 자물쇠를 채웠다.
상오 7시30분부터 결정문인쇄가 시작됐다.
조 부장은 배석판사들과 함께 최종적으로 자귀수정과 오자 (謀字) 를 고쳐나갔다.
이 무렵 기자들은 불과 2m떨어진 바로 앞에 있는 조 부장 방을 연신 드나들며 재판부의 행방을 묻고있었다.
20여부의 결정문 등사작업이 끝났다. 이때 조 부장이 민사지법 김덕주 원장에게 최종적으로 보고하려고 711호실을 나왔다. 4층 원장실로 가는 복도에서 혈안이 되어 재판부를 찾던 기자들과 맞부닥쳤다. 기자들과 함께 원장실로 간 조 부장은『결말여부는 모르겠다. 만약 오늘 결정통고를 하게 되면 양쪽 당사자들이 결정통지를 받아 효력이 발생하는 것과 동시에 내가 기자실에 결정문유인물을 갖고 가 자세히 설명하겠다』고 약속했다.
원장실을 나온 기자들이 문밖에서 계속 진치고 있자 조 부장은 상오 9시50분쯤 평소 사용하지 않는 원장실 뒷문으로 빠져나가 7동으로 올라갔다.
조 부장은 상오 11시3분 담당계장에게 2통의 결정문을 집달리를 통해 당사자들에게 전하도록 했다.
상오 11시18분 마감시간을 이미 넘겨 북새통을 이룬 기자실에 재판부의 입회서기가 결정문유인물을 갖고 왔다.
결정내용이 밝혀지자「토요일의 충격」은 이미 밖으로 번졌고 그 진원지는 오히려 토요일 하오의 여느 관공서와 같이 조용해졌다.

<조언 부장판사 결근>
○…신민당 김영삼 총재 등 직무집행정지 가처분결정을 내린 서울민사지법 합의16부 조언 부장판사는 10일 상오 출근하지 않았다.
조 부장판사는 지난8일 가처분결정을 내린 뒤 김덕주 민사지법원장에게『며칠 쉬겠다』고 말했고 일요일인 9일 밤에도 김 원장 자택으로 전화를 걸어『열이 나 좀 쉬겠다』고 말했다고 한 법원직원이 전했다.
배석 김중곤·김동건 판사도 10일 상오 11시 늦게 출근했다.
김 원장은『조 부장이 언제쯤 출근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더 이상 조 부장 문제를 포함, 가처분결정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말아달라』고 대답을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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