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비학원과 공무원의 대립은 그당원이 보다 깊은데 있었다. 사찰령 이후 오종을 표방하는 대처승들에 의해 돈단이 지배되어 오면서 한국불교가 일본불교화되어가는것을 막고 한국불교의, 특성인 비종을 진홍시키기 위해 장기적으로 세워진 것이 선학원이었기 때문에 선학원과 총무원의대립은 비곽 교가 대립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지은 비구
독신승을 교는 대처승이라는 구분이 겼다. 이 선학원과 총무원의 대립은 비구·대처의 대립을 뜻하게 되었다. l934년 당시의 비학원 주재 금적음스님에 의하여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비매삼구원이 인가된 뒤부터 매년 4O여명의 비장·위린들이 운집하여 수행하는한편 전국의 선원을 규합하고 일반신도에게 비올 보급하여 그세력이 날로 커가고 있었기 때문에총무원으로서는 견제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데 해방후 충국에서 돌아온 금구선생이 한국불교를 민중화하여 대중불교를 해야 한다고하자, 그것이 곰 승려가 대처들하고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라는 아전인수격의 해석을 송부원족 사람들은 하고서 용기백배였다. 그러나 금구선생의 뜻은 결코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불교가 산중에만 있지말고 도시와 종손으로 나와서 교화사업을 활발히 펴고『중국의 재가거사들이 매월 어느 시기를 재계일로 정하여 그날은 걸대로 흠주식육을 아니하고 불융를 지기며그들이 모두 사회의 중진이어서뷸교가 반근착절하는 것을 중국에서 보았는데』그와같이 하라는것이었다. 사실 김구선생은 항상 대혜스님의 서상에 나오는 반야경송『낭떠라 에 매달렸을때 손을 놓아버릴 수 있어야 진정한 대장부이다』 (현애철수장부아)라고 한법구를 일생의 지침처렴 여기고그 많은 난국을 당할 때마다 되새켰다고 스스로 말할만큼 비이일상화된 분이었다.
김구선생이 어 법구를 엄은것은 명악황후시해사건을 들고 분개하여 한 사람의 일인을 푹이고 사현선고릍 받고 인천감옥에갇혔다가 탈옥하여 창곡사로 피해가 포당스님애게서 계릍 받고 숭려생활율 할 때였다. 이때 금구선생의 법명은 원종이었다.
그래서 선생을「종대사」라고 불렀는데『네』하고 대답할 때마다 머리속은 착잡한 생각으로 가득찼고 그것은 승려로서 생을 마칠 생각이 없이 잠깐 피신하기위해 승려가 된 것이며 항상 왜적의 발굽에 짓밟힌 초국을 건지는데만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후일 술회했다.
김구선생은 결코 . 승려가 대처를 해야 불교가 민중화 한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소앙씨는 원만스님을「새벽 스님」이라고 부르며『원효 스님이 요석공주와 결혼하여 한 여자를 건지고 산인의 생애를 해방하여 해탈한 불교, 즉 대승불돈를 주창하면서 우리 불교가 일찍부터이 스님의 본을 받아 불교를 개혁했다면 우리 3천만이 평등하고 집집마다 불이요.사람마다부처의 필어 밝혀겼을것』이라고 추강했다.
또 그는 아 큰 스님의 항지를 몰랐던 관계로 천년후 이제와서야 대처도 하고 먹는 것도 일반 사람이 먹는 것을 먹으며직업도 일반화하여 들에서 스님을 보고 어촌에서 도인을 접하게 되며 어부에게서 법을 듣게되었다고 대룻를 권장했다.
그런가하면 장상길스님은『왜 소,승이 대승이 뫼고 독신이 대위카 되었으며 인도불교가 인도교 지고 말았는가?』그것은 비현실적인 비구제의 를합려탓이고 소승의 비 달도탓이며, 계율을 생동적으로 변화시키지못했기 때문이라고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비록 불교가 불타의 고제에 의한다 하더라도 비생산적이고 무인성적이며 비현실적인 그대로는 한국민족에게 맞지 않으니 분 고찰해서 바꿔야 한다고 대처의 타당성을 백일하에 주장하면서 비구생활이란 부자연한 생활이며 영구적이고 보편적으로 편해짙 수 없다고했다. 또 불교 내부에서 해방의 바람이 불었다고전대처승을 대변해호언했다. 이것이 1945년 해방 이후의 사희일각 교단내 대처승들의생각이고 보면 총두원파 비학원의 대립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만해 한룡운스님은 불교의 앞길 온 승러가 대처를 하느냐 않느냐에 달려있다고 전제하고 무처부입하고 무사부용하는 불교가가취를 금하는 구구한 계율에 얽매일수 없는 것이며 계율애서 불교를 구하려는 자는『개미구멍에서 호랑이를 잡으려는거와 같다』고 대처를 옹호하는입장을「불교유신논」등을 통해 발표하기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