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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향과 거품의 예술 맛깔난 이야기로 ‘화룡점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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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호 16면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 1998년 영국 런던에서 창설돼 70여 개의 회원국과 35개 국가에 챕터를 가지고 있는 비영리 국제 커피 협회 SCAE(유럽 스페셜티 커피 협회)와 SCAA(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에 의해 아일랜드 더블린에 등록된 월드 커피 이벤트(WCE)라는 이벤트 관리 기구가 주관한다. 2000년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1회 대회가 시작됐다. 이후 월드 라테 아트(Latte Art) 챔피언십, 월드 브루어스 컵, 월드 컵 테이스터스 챔피언십, 월드 커피 인 굿 스피릿 챔피언십, 월드 커피 로스팅 챔피언십, 월드 체즈베/이브릭 챔피언십과 같은 커피 관련 경기를 탄생시켰다. 매년 나라를 바꿔가며 챔피언십 행사를 치루며 내년에는 미국 시애틀에서, 2016년에는 주최측 본부가 있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에스프레소 커피의 본고장 이탈리아에는 스타벅스 같은 커피 프랜차이즈가 없다. 모두 개인이 운영하는 바(Bar)다.

바리스타 월드컵, 이탈리아 WBC를 가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바에서 그냥 “커피 주세요”하지 않는다. 카페 에스프레소, 리스트레토(에스프레소보다 더 짧게 뽑는 커피), 카페 룽고(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의 중간), 마키아토 칼도(데워서 거품 낸 우유를 조금 넣은 에스프레소) 혹은 프렛도(에스프레소에 찬 우유를 조금 넣은 것), 카푸치노, 마로키노(마키아토와 카푸치노 사이), 카페 쉐케라토(얼음을 갈아 섞어낸 냉커피), 데카페이나토(무카페인) 등 각자의 취향대로 주문한다. 게다가 거품을 적게, 덜 뜨겁게, 더 진하거나 싱겁게 등 입맛을 고려한 주문까지 덧붙인다. 그래도 바리스타(Barista)는 주문받은 대로 척척 커피를 내놓는다. 바리스타는 이탈리아어로 ‘바 안에서 만드는 사람’이란 뜻이다.

바로 이 바리스타들의 월드컵이라 할 수 있는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이 개최됐다. 6월 9일부터 12일까지 이탈리아 중부 에밀리아 로마냐주의 휴양도시 리미니(Rimini)의 박람회장에서 열린 제 15회 WBC에는 54개국에서 선발된 바리스타들이 실력을 겨뤘다. 4회 월드 브루어스(Brewers)컵, 제 2회 커피 로스팅 챔피언십, 월드 체즈베/이브릭(Cezve/Ibrik) 챔피언십, 제 1회 월드 오브 커피 리미니 전시도 함께 열렸다.

리미니 박람회장 내의 기차역은 7월과 8월에만 운영되기 때문에 택시를 타야만 했다. 전시장에 들어가니 커피 볶는 향이 코를 찌른다. 원두 유통 브랜드, 로스팅 기계 및 장비업자, 커피 프랜차이징 회사들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자마이카,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브라질 등 원두 생산국의 농장들도 나라별, 혹은 개별로 참여했다. 캡슐 커피의 붐을 일으킨 네스프레소와 세계 최초로 세라믹 로스팅 기계를 만들어 굿디자인 상을 받은 한국의 세로피 브랜드도 만날 수 있었다.

원두를 유통하는 대형 브랜드들은 유명 바리스타와 쉐프를 초빙해 즉석에서 뽑아낸 커피를 제공하거나 카푸치노를 사용한 라테아트 시범을 보이며 방문객들의 주의를 끌었다. 이탈리아 라테아트 챔피언 키아라 베르곤지를 불러온 란칠리오 커피머신 부스가 가장 북새통을 이뤘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공짜 커피를 생각없이 마시다 보니 눈은 말똥말똥, 가슴은 두근두근했지만 런던에서 한 잔에 80파운드(약 14만원)에 판다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핸드드립 커피는 잠을 못 이루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맛을 봐야했다.

83개국 커피 농장 찾아다니는 바리스타들
원산지와 로스팅, 추출 방식까지 생각한다면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오감으로 즐기는 일종의 ‘의식’이다. 어떤 생두를 사용했는지, 그 생두에 적합한 로스팅을 했는지, 그리고 분쇄의 굵기·물의 종류와 온도·추출 방법(에스프레소, 핸드드립 등)까지 일일이 따져야 한다. 때문에 훌륭한 바리스타는 많은 경험과 연구로 궁합이 잘 맞는 커피 제작 방식을 찾아내고 또 익힌다. 보석 제작자가 직접 원석을 구하러 다니듯 요즘은 바리스타들도 좋은 원두를 찾아 83개국의 커피 생산국가를 직접 방문해 농장과 직접 거래하기도 한다.

또 자신만의 시그니쳐 커피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향과 추출방식, 프레젠테이션 방식을 개발하기도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질소를 사용해 색감과 향이 더 진한 커피를 만들어 우유나 설탕 없이 생맥주처럼 마실 수 있게 한 커피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 하와이안 코나, 그리고 에디오피아산을 세계 3대 커피로 꼽는다. 인도네시아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소화되지 않고 남은 커피로 만든 루왁, 일반 생두보다 작고 한쪽이 편평하여 특별 대접받는 피베리 등도 그 희귀성과 맛 때문에 최고의 커피로 취급되고있다.

한국 씨엠테크의 로스팅 머신 ‘세로피’

커피의 맛과 거품의 촉감으로 평가
WBC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했을 때 마침 홍콩의 바리스타 카포 츄(Capo Ciu, 2014년도 준우승)가 실연(實演)중이었다. 이 대회에 참여한 바리스타는 15분 동안 에스프레소 4잔, 카푸치노 4잔, 시그니쳐 드링크 4잔(에스프레소를 기본으로 한 창작 무알콜 음료)을 순서에 상관없이 네 명의 심사위원에게 제공해야 한다. 자신이 사용할 기구와 잔은 직접 가져와야 하는데 종종 심사위원들에게 커피를 제공할 우드 트레이도 직접 짜오기도 한다.

테이블 맞은 편에 네 명의 센서리(Sensory) 심사위원이 앉아있었다. 이들은 바리스타가 낸 에스프레소를 신맛·단맛·쓴맛의 정도와 입술 및 혀 끝에 닿는 촉감으로, 카푸치노는 맛은 물론 거품 밀도와 두께로, 그리고 시그니쳐 드링크는 창의성과 맛, 용기의 아름다움과 프레젠테이션을 합쳐 평가한다. 두 명의 테크니컬 심사위원은 바리스타의 주변을 돌며 기구 사용 능력과 청결도, 능숙도 등을 꼼꼼히 체크했다.

카포 츄는 유창한 언어로 자신의 열정과 커피원두, 제작방법을 설명하며 시간 내에 12잔을 모두 만들어 내 심사위원과 관중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WBC의 모든 실연은 주최측 주관하에 생방송으로 중계됐고 가이드북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스트리밍 관람 또한 가능했다.

월드 브루어스 컵 챔피언십(WBRC)이 열리는 장소로 갔다. 핸드드립 커피를 평가하는 이 대회에서는 기계를 사용하면 안되며 7분 동안 3잔의 드립커피를 추출해야 한다. 세 명의 심사위원은 아로마·맛·향·산미·바디·밸런스를 평가해 점수를 낸다. 브라질 대표 바리스타는 영어를 하지 못해 동시통역사의 도움을 받았는데 열정이 그대로 전달이 안 되었는지 파이널리스트에는 들지 못했다.

WBC의 경우 60여 명의 심사위원이 경기 둘째 날 12명, 셋째 날 6명을 선정하고 마지막날 한 명의 우승자를 가려낸다. 로리 리 WCE 비즈니스 개발이사는 “우승자라도 다시 WBC에 도전할 수 있지만 두 번 도전한 사람은 없다”라며 “대신 젊은 도전자들의 코치를 하거나 커피 관련 사업에 참여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월드 커피로스팅 챔피언십에서 2위를 차지한 장문규 로스터

한국 장문규, 로스팅 부문 준우승
올해 WBC의 우승컵은 일본 최고의 커피하우스로 꼽히는 마루야마 커피의 바리스타 히에노리 이자키가 가져갔다. WBRC 우승은 그리스의 스테파노스 도마티오티스가, 그리고 월드 커피로스팅 챔피언 우승은 대만의 유 츄안 재키가 차지했다.

히에노리는 스타일이 활기차고 쇼맨십 또한 뛰어났다. 그는 이번 대회를 위해 전 챔피언 홀리 배스틴, 피트 리카타와 함께 트레이닝을 했다. 히데노리는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커피를 설명했는데 해박한 지식과 열정이 객석까지 충분히 전달됐을 정도였다.

이번 대회를 위해 그는 코스타리카 몬테 코페이(Monte Copey) 농장의 레드 버본과 티피카 품종을 선택했다. 더 좋은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재배업자와 자주 이메일을 주고받았던 그가 대회에 사용한 커피 이름은 ‘에스프레소 포커스드 커피(Espresso-Focused Coffee)’. 심사위원에게 낸 4잔의 에스프레소에 사용된 커피는 총 67g이며 그 중 24g는 컵 안에 내려졌고 43g은 포터 필터에 남았다. 영국산 경수(hard water)를 사용했는데 아마도 끓이면 칼슘이온과 마그네슘 이온의 양이 줄어 단물이 되기 때문인 듯하다. 시그니쳐 드링크는 복숭아와 체리 시럽을 섞은 아이스 커피로 역시 센물로 만든 얼음을 사용했다.

한국에서는 프리츠(Fritz) 커피 컴퍼니의 박근하 바리스타가 WBC에, 카페베네의 추승민 바리스타가 WBRC에, 5브루잉 커피의 장문규 로스터가 월드 커피로스팅 챔피언십에 출전했다. 태극 마크를 달고 경기에 임한 장씨는 당당히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아쉽게도 박근하 바리스타는 14위, 추승민 바리스타는 7위에 머물렀다. 박근하 바리스타는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온 심사위원들을 설득하는 게 중요한데 내 얘기가 전달이 덜 된 것 같아 안타깝다. 이들은 내 의도를 이해는 했지만 공감하지는 못한 것 같다. 국제 경기에 참여하는 것이 커피 제작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인맥 형성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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