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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의 시행착오 되풀이 않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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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다시 밀어닥친 석유파동으로 우리경제는 73년「오일·쇼크」에 못지 않은 어려움을 맞고 있다.
73년 석유파동때 우리가 숱한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우리와 처지가 비숫한 대만은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최단 시간내에 안정을 되찾는 지혜를 보였다.
대만이 경험한 성공의 비결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시련을 헤쳐나가는데 타산지석의 구실을 할 수도 있다.
73년 석유파동 때 단만이 취한 조치는 ⓛ과감한 물가 현보화 ②재정·금융의 긴축을 봉한 총수요관리의 강화 ③수입 문호확대와 국제수지 적자의 감수 등 몇 가지로 특징 지울 수 있다.
그들도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러나 시행착오는 한번에 그쳤다.
73년10월 석유무기화 조치가 단행되자 대만은 협정 가격제(정부와 업자가 협의 결정하는 가격)를 실시하고 석유·직장 등 주요 품목에 대해서는 값을 올리지 못하게 하는 대신 국제시세와 종전수입가격과의 차액을 정부가 보전해 준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협정가격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정부보조를 받는 상품에 대해서도 일동가격이 형성되는데다 재정부담을 감당할 길이 없어 실패로 끝났다.
그래서 74년1월26일 전격적으로 실시한 것이 이른바 「신경제 안정 종합시책」으로서 73년「오일·쇼크」를 극복한 명처방으로 알려진 것이다.
이 조치를 통해 정부는 인상요인이 있는 가격은 1백% 현실화했다.
이 때문에 72년에도 4.5% 수준으로 안정돼 있던 도매물가가 74년 3월말까지 40%이상 대폭 올랐으며 소비자물가는 47.5%나 뛰었다.
이처럼 물가를 현실화하여 수급을 시장기능에 맡기는 한편 금융 긴축을 강화, 금리를 4%「포인트」나올려 저축을 유두하는 일방 통학량 증가율을 7%로 억제했다.
동시에 수입문호를 열어 수입 자유화률을 72년의 34%에서 74년에는 96%로 대폭 확대했다.
이 때문에 74년의 수입액은 73년보다 한꺼번에 84%나 늘어난 69억6천5백만「달러」에 달했으며 73년만 해도 6억「달러」의 흑자를 보였던 무역수지가 11억3천3백만「달러」의 적자로 발전했고 경상적자만 11억l천2백만「달러」를 기록했다.
이 같은 경상적자폭은 낭만GNP의 8%에 해당하는 규모로 실로 과감한 조치라 할 수 밖에 없다.
총수요관리와 가격상승에 마른 수요감퇴와 시장기능 회복 및 수입확대에 마른 공급물량 증가는 1·26조치가 있은 지 2개월이 지난 3월부터는 물가가 고개를 숙이기 시작, 다음해인 75년에는 오히려 전년비 5%의 하락현상을 보였다.
과감한 긴축정책이 가져온 성과라 할 수 있다.
73년 말 석유파동이 났을 때 우리 나라는 8·3조처에 의한 물가3%의 억제 미망에 매달려 행정력을 총동원, 가격을 내려 누르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73년은 세계 경기상승으로 수출수요가 늘고 원자재를 비롯한 상품 시세가 급격히 오른 해였다.
내수가격이 정부의 규제로 묶이자 생필품까지 모두 값이 좋은 해외시장으로 팔려나가 면사·비누 등이 잇달아 품귀소동을 일으키는 사태까지 빚었다.
이런 여건에서 석유파동을 맞은 만큼 국내 물가상승요인은 대만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었다.
대만은 73년부터 경상수지흑자를 바탕으로 수입문호를 열기 시작, 해외의 원가상승요인을 국내물가에 그때그때 반영시키고 있었다.
더우기 한국은 유류값을 4백%나 올린데 반해 대만은 정유회사가 원가절감에 노력, 우리 나라보다 20% 싼값에 석유를 공급했다.
대만은 정유회사가 「메이저」 와 합작 아닌 국유국영이라는 점도 다르다.
이처럼 인상요인을 더 안고 있으면서도 정부는 행정력에 의한 물가규제의 타성을 벗어나지 못해 인상요인이 있는 품목도 현실화를 미루다가 인상 압력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다.
74년에 42.1%나 물가를 올리고도 다시 75년에 24.6%, 76년에 12.1%로 만성적「인플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대만과 우리와는 여건이 같지 않다.
대만은 겨울에도 난방비가 필요없으며 식량도 진작부터 자급해 오고 있다.
우리보다 생계비 부담면에서 여유가 있는 셈이다.
이런 여건의 차이가 석유파동과 같은 위기를 극복하는데 결정적 작용을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석유파동을 넘긴 대만과 우리의 근본적인 차이는 저들이 경제이론에 맞게 합리적으로 대처한데 비해 우리는 원칙을 무시한 처사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같은 물가현실화조치를 해도 시기를 잃든가 인상요인을 남겨놓아 이중가격의 형성·매점매석 등 혼란을 자초해 왔다.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양쪽의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은 대만의 경제정책이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데 한국의 경제 정책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심각한 문제로 지적한다.
올해의 석유파동에 경부는 진작부터 물가현실화와 재정·금융의 긴축, 수입확대 정책 등으로 맞서고 있다.
상반기의 긴축정책은 6월말에는 차분한 성과를 보여 치솟기만 하던 물가가 내리는 현상까지 보였다.
일단 대책의 방향을 옳게 잡았다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정책의 일관성이다. 눈앞의 물가고와 긴축의 고통, 불황의 불안을 기업인·가계, 그리고 위정자 자신들이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느냐가 문제다.
긴축정책을 발표한지 불과 2개월 여만에 수출금융의 물꼬를 터야 하고 기업이 한 두개 흔들린다고 구제금융이 쏟아져 들어 간대서는 안정화 시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어려울 것이다.
대만이 보여준 안정화의 길은 국제수지악화·성장둔화·자금난 등의 희생 위에만 가능했다. <신성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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