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황병기 가야금 명인·이화여대 명예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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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동영상은 joongang.co.kr [최효정 기자]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중략)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1915~2000) ‘국화 옆에서’ 중에서

가야금을 처음 배운 것은 6·25 발발 이듬해인 1951년이었다. 피란지 부산에서 중학교 3학년에 다니던 때였다. 그로부터 10여 년, 서울대 법과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가야금을 손에서 놓을 수는 없었다. 처음 작곡을 시작한 것이 1962년이니 가야금을 배운 지 11년 후였다. 문학이나 미술에서는 새로운 작품이 나오는데 왜 우리 음악에는 창작이 없는가, 라는 불만에 사로잡혔다. 전통으로 내려오는 것만 연주하다 말 것인가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음악에서도 새것을 작곡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주제를 문학, 특히 시에서 찾았다.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시를 골라 전통 가곡 어법에 맞게 작곡해 보려고 시도했다. 그 무렵, 처음 고른 시가 미당(未堂)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였다. 미당의 시는 서구 시와 전혀 다르면서도 막상 전통 시에는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전통 시조가 음풍농월에 젖어 있었다면 미당의 시 속에서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이렇게 해서 내 처녀작은 가야금 전공자이면서도 가곡이 되었다.

 이 특별한 인연 덕에 미당의 환갑 때 ‘국화 옆에서’가 연주되었다. 미당은 직접 듣고 난 뒤 좋아하셨다. ‘국화 옆에서’는 내 첫 작품으로 맺어져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의 시가 되었다.

황병기 가야금 명인·이화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