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최고의 「빌딩」이 헐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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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뾰촉탑, 붉은 벽돌집」으로 이름난 부산세관의 옛 청사(부산시중앙동4가)가 부두도로확장 공사에 밀려 헐리고 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삼킨 19l0년(한일합방), 일본인 설계사 암전오월만씨가 설계한 이 건물은 부산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빌딩」.
부산중앙부두 길가에 버티고서 80년 동안 부산항의 온갖 변천사를 지켜본 이 건물은 한때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됐으며 개화기의 유물로 보존키 위해 이전복원 등이 검토됐으나 정부의 긴축정책에 눌려 대안없이 헐리게 된 것이다.
53년 부산역전 대화재로 불탄 부산역 청사와 더불어 독특한 건축미를 자랑해온 이 건물은 부산시로부터 3천7백만원에 해체 도급을 맡은 보생건설이 지난2일 철거작업에 들어갔으며 6월중으로 그 모습을 감추게 된다.
「르네상스」양식의 이 건물은 잘 다듬은 화강암을 사용, 동쪽과 남쪽으로 구부러진「ㄱ」자형으로 기초를 쌓고 그 위에 붉은 벽돌로 1층(l백46·9평) 2층(1백51·2평)까지 벽체를 쌓아 올렸으며 지붕은 녹색「다이어먼드」형 「슬레이트」를 입혔다.
「ㄱ」자의 모서리에는 4층 높이의 탑(평면넓이 16평방m)을 올렸고 맨 꼭대기에 종각을 만들었다.
종각은 서울역역사 등 우리나라 초기 서양식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창문을「아치」형으로 만들어 운치를 더했다.
부산대 도영주 교수는 이 건물의 북쪽에 있는 현관이 오른쪽으로 치우쳐 대칭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오른쪽 끝인 「ㄱ」자 모서리에 별로 장식 없는 탑신을 뽑아 올려 건물전체의 균형을 잡은 것 등이 이 건물의 조화미를 더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벽체에 사용된 붉은 벽돌은 「러시아」제로 한개씩 비단에 싸서 실어왔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벽돌은 여느 벽돌과는 달리 망치로 때려도 잘 깨어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다.
서울의 수운회관 등 1920년 이전에 세워진 건물로는 보존상태가 가장 좋아 73년6월 지방유형문화재(22호)로 지정됐으나 75년 도로확장을 위한 도시계획 때문에 문화재에서 밀려났다.
문화재지정 때 조사를 맡았던 원로 건축가 김택신씨(72)는 이 건물이 건축학사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며 해체를 하더라도 측량을 해 설계자료로 남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대책 없는 철거를 아쉬워했다.
【부산=이무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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