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글로벌 아이

시진핑과 중·조·동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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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한국의 대중 외교에서 가장 아쉬운 게 역지사지(易地思之)다. 한국 입장에서 중국은 잘 분석하는데 중국 입장에서 한국을 보는 데 참 약하다.

 한국 외교가 미국이나 서구 중심의 사고로 중국을 바라보는 데 익숙한 탓일 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기대에 부푼 한국 외교가 딱 그렇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서 전면적 전략협력 동반자 관계로의 격상에 대해 중국이 더 적극적”이라고 한 외교 당국자의 말이나 “시 주석이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찾는 함의가 크다”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한데 중국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 방한은 기대보다는 ‘우려’ 혹은 ‘고민’을 먼저 하는 게 순서일 게다. 왜 그런가.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나 외교관들을 만나 보면 이번 방한에 거는 기대는 대체로 세 가지다.

첫째 한국의 중립화(中立化)다. 미국과의 신대국 관계 설정에 거의 올인하고 있는 중국은 미국에 치우치는 한국이 달갑지 않다. 한·미가 밀착할수록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이 탄력을 받고 결국 중국 안보에 이롭지 못하다는 판단에서다.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면서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는 한국의 양다리 걸치기는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옌쉐퉁(閻學通) 칭화(淸華)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은 장차 한국과 동맹을 맺어 한국을 중·미 중간에 묶어 두는 게 중국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펼 정도다. 결국 한국은 중국의 중립 요구에 어떤 식이든 답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건 분명 기대가 아닌 고민이고 고충이다.

둘째는 조선(朝鮮), 즉 북한 문제다. 정부는 중국의 국가주석이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찾는다는 점에서 중국의 대북 전략 수정 가능성에 기대를 하는 것 같다. 윤 장관이 말한 ‘함의’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중국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최근 만난 외교부 관리의 해석은 이렇다. “시대가 변했다. 관례가 뭐 그리 중요한가.” 한국이든 북한이든 상황에 따른 것일 뿐 방문 순서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기존 대한반도 정책은 변화가 없고 이는 시 주석 방한으로 다시 확인될 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국의 대북 정책 변화를 바라는 한국에 중국은 “어떻게 설득할래”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셋째 동북아 안정 문제다. 중국은 최근 동북아 불안이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인식에서 시작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반일 전선에 중·한 공동 보조를 강력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같은 이유로 한·일 관계가 냉전이라고 중국과 보조를 맞출 경우 중·일 관계 개선 후 한국의 대일 외교 입지가 궁색해질 수 있다. ‘친척 방문’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시 주석 방한을 앞두고 한국 외교가 화려한 ‘수사(修辭)’보다 ‘고민’을 먼저 해야 하는 이유다.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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