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 장기신용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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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간자본에 의한 설비금융전담은행의 설립구상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는 것같다.
이런 구상은 현실적으로 예견되는 몇가지 난관이나 문제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낙후된 국내 금융산업을 개발하는데 일조가 될 것으로 짐작된다.
현행 금융제도나 금융산업의 능력과 수준만으로는 급격히 변해가는 현실경제를 원활히 지원하기도 힘들뿐아니라 이를 지도하기는 더욱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이런 평가는 당연히 광범위한 금융산업개편의 필요성을 제기함으로써 최근 각계의 의견개진과 논의가 점차 활기를 더해가고 있다. 정부가 착안한 민간장기신용은행의 설립도 이런 최근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알려진 설립구상으로는 자본금을 5백억원규모로 민간기업주도로 설립하되 3년이상의 중장기설비금융을 전담케 한다는 것이다. 국영은행인 산은이 주로 장기의 정책사업설비를 지원하고 있어 민간「베이스」의 설비금융전문은행 구상은 얼핏보기에 매우 자연스런 연결처럼 느껴진다.
이는 금융산업의 구색을 맞추는 명분외에도 고갈된 금융원천을 새로 개발하는 실질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거의 한계에 다다른 기존 금융기관에의 자금수요압박을 부분적으로나마 절감해보려는 시도도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설립목적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먼저 해결해야할 몇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새 은행의 업무영역이 과연 지금의 상정대로 명확히 구분되어 독자적인 금융기능을 해낼 것인지를 따져보는 일이다. 형식상으로는 지금도 산은은 장기정책설비지원을, 시중은행은 단기 상업금융을 전담시키고 여타 국책은행은 그 나름으로 독자적인 특수시장을 구축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볼 때 국내 금융시장이 과연 이같은 확립된 업무영역을 구축하고 있는지에는 약간의 의문이 따른다. 투자와 국내 저축간의 현저한 격차로 파생된 무한정한 자금수요가 기존 금융기관의 특수성을 크게 퇴색시켜온 현실을 가리기 어렵다.
더욱이 최근에는 중화학공업화가 급격히 촉진되면서 정책자금의 수요와 비중이 현저히 높아짐으로써 상업금융의 영역이 너무 위축되어버렸다. 이런 금융여건아래서 민간신용은행이 과연 설립목적대로 독자적인 업무영역을 지켜갈 수 있을지가 매우 관심거리다.
때문에 새로운 금융기관의 창설은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장기적인 금융산업의 재편성이라는 기본틀에 어긋나지 않게 하는 일이 우선 긴요하며 더 구체적으로는 새 은행의 독자영역이 확보될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함께 조성하는 과정이 불가피하다.
이런 노력은 궁극적인 시은민영화의 준비과정으로서도 필요할뿐아니라 관치금융의 누적에 따른 금융의 경직성을 불식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과도한 정책자금비중을 낮추기위해서는 개발의 목표와 수단을 재검토하고 더 지원할 곳과 이제 그만둘 분야를 새로 가려 금융에의 과부하를 낮출 수 밖에 없다.
문제를 신용은행에만 국한시킨다해도 약간의 애로가 없지 않을 것이다.
채권발행에 주로 의존할 재원조달이 과연 여의할지, 또는 이런 조달비용으로 중·장기설비지원이 어떻게 가능할지, 또는 민간의 자본참여를 어떻게 안배하고 경영과 분리시킬것인지 모두 사전에 숙고되어야할 부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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