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원형을 잃었다 송석하씨 소장 사진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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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가면극의 원형이 많이 상실돼 그 복원이 시급하다.
민속학의 개척자 고 석남 송석하씨(1904∼l948)가 소장했던 미발표 사진자료 2천여 점이 유고 71편과 함께 유족 측에 의해 완전 공개되면서 이 같은 사실이 관계자들에 의해 지적된 것이다.
19일 그의 여동생 송석혜 여사(57)가「석남 송석하 민속전집」(전4권)을 펴내기로 하고 공개한 이 유품들은 1930년대 우리의 모든 민속자료를 망라하고 있어 사라져 가는 우리고유의 것을 되살리는데 중요한 근거자료로 평가된다.
석남이 남긴 방대한 사진자료들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가면극관계. 하회별신굿 놀이를 비롯하여 봉산탈춤·강령탈춤 등의 해서가면극, 양주별산대놀이, 통영5광대 등 당시 연희되고있던 대부분의 민속극을 원형대로 담고있다.
이들 사진에 수록된 것 중 특히 황해도 해주에서 채집한 강령탈춤의 경우, 그 등장가면과 연회모습이 현재의 것과 많이 달라 주목을 끌고 있다.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는 강령탈춤에 쓰이는 탈은 현재 13개. 그러나 40년 전인 1938년에는 모두 15개였다 8가면의 모양이 현재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은 노장·취발이·말뚝이 등.
현재 사용되는 노장탈은 둥근 얼굴모양에 마치백발을 흐트러뜨린 듯한 송낙(갓)을 쓰고 있으나 당시의 탈은 검은 색 바탕에 미간·볼·아래턱 등에 혹이 난「그로테스크」한 모습을 하고있어 봉산 탈과 비슷하다.
말뚝이의 경우는 차이가 더 심하다. 당시에는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가 눈을 부릅뜬 모습을 하고, 볼에 흑을 크게 그렸는데 현재의 것은 눈썹이 짙고 매우 정돈된 모습을 하고 있어 대조적. 대체적으로 당시의 탈에 비해 현재의 탈은 사실성이 떨어지고 멋과 기교가 부족하여 일견 조작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석남의 사진자료들은 이미 1백여 점이 추려져 「석남민속도록」으로 나온 게 있으나 이번의 완전공개로 아직 제대로 고증이 안된 많은 민속극의 원형을 되살리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관계자들은 기대한다.
석남과 함께 우리 나라 민속학의 주춧돌을 놓은 민속학자 임석재 교수도 이들 자료 공개를 기뻐하면서 『오히려 개악되고 있는 현재의 민속관계자료들은 민속본래의 맛을 잃어버리게 할 우려가 있어 그 원형을 되찾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하는 한편 그 복원에 석남의 자료가 유용할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가면극의 잘못된 전승 사례로 임교수는▲의상이 너무 화려해지고▲춤사위가 거칠며▲「그로테스크」한 가면 특유의 표정을 연희자들이 살리지 못하고있다고 지적했다.
임교수의 이 같은 지적은 1934년「스웨덴」의 조류학자「베를만」씨가 찍은 봉산탈춤「필름」에서도 입증된다. 1970년에 임교수가 입수, 21일 공간사립에서 일반에게 처음 공개될 이 「필름」은 당시 황해도 사리원에서 공연된 것을 생생하게 담고있다. 의상에 있어 팔먹 중의 의상은 저고리(더거리)가 까만 색깔이고 반소매이며 모습이 질속한 것에 비해 현재의 의상은 지나치게 화려하다는 게 그 일례.
임교수는 오늘날의 탈춤이 불과 40여 년만에 변형된 것은 이를 재구성한 분들이 기억은 있으나 표현능력이 없어 원형을 벗어난 때문이라고 보았다.<방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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