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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1대분 부품 만드는 데 단 54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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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근로자가 ‘프런트 엔드 모듈’을 조립하고 있다. 이 모듈은 헤드램프 등 28개 부품을 조립해 하나의 부품덩어리를 만든 것이다. [사진 현대모비스]

24일 오전 11시30분 자동차 부품기업인 현대모비스 아산 공장의 자재부. 부품 상자별로 쉴 새 없이 불이 들어왔다. 불은 작업자가 해당 부품을 꺼내고 버튼을 눌러야 꺼졌다. 이렇게 모인 부품 세트는 조립 라인으로 리프트를 통해 전달됐다. 이영기 아산공장 생산실장은 “컴퓨터가 필요한 부품이 담긴 상자에 불을 켜주면 작업자가 부품을 옮겨 담는 디지털 피킹 시스템”이라며 “같은 차종이라도 옵션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사람이 서류를 보면서 부품을 담으면 헛갈려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부품 생산이 시간과 싸우고 있다. 품질은 이미 기본이다. 이제 부품 공장은 소비자와 완성차 업체가 원하는 시간까지 맞추기 위해 진화하고 있다. 공장 증설 없이 LF쏘나타처럼 주문이 밀려 있는 인기 차종을 하루라도 빨리 만들려면 낭비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대응 카드는 직서열(Just in sequence) 시스템이다. 예컨대 현대차 아산공장에선 조립 시작 후 101분이 되면 차량 내 운전석 앞 부분을 조립한다. 여기서 12㎞ 떨어진 현대 모비스 아산공장은 이 공정에 맞춰 85분 안에 운전석 모듈(계기판·오디오 등을 조립해 만든 부품 덩어리)을 만들어 현대차 근로자 옆에 갖다 놓는다. 두 공장 간 시간 차이(16분)는 교통 정체 등에 대비한 여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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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 사태에 대비하지만 시간 싸움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장 큰 장애물은 다양해진 차량 옵션에 따른 사람의 착각이다. LF쏘나타만 해도 배기량, 내·외부 색깔, 휠·내비게이션 종류, 하이패스·선루프 포함 여부 등에 따라 각양각색의 차가 주문된다. 모두 쏘나타로 분류되지만,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각각 다른 제품이다. 게다가 모비스는 한 라인에서 여러 종류의 차를 동시에 만든다. 부품 수도 많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와이어만 2500개가 넘는다. 실수로 하나라도 잘못된 와이어를 끼우면 전체 조립에 들어간 시간이 허사가 된다. 디지털 피킹시스템도 이런 착각을 막으려고 고안했다. 조립 과정에서도 부품끼리 바코드가 맞아야만 다음 단계로 넘길 수 있다. 최종 점검에선 컴퓨터의 눈을 빌린다. 디지털 카메라가 찍은 모듈 사진을 바탕으로 컴퓨터는 볼트가 정해진 위치에 끼워져 있는지까지 점검한다.

 물건을 옮겨 담는 시간도 최소화했다. 모비스 협력업체는 세부 부품을 상자째로 모비스에 납품하고, 모비스는 이 상자를 통째로 부품함으로 쓴다. 납품용 박스에서 저장용 박스로 옮기는 시간을 줄이고, 옮기는 과정에서 다른 종류의 부품이 섞일 가능성마저 차단해 버린 것이다. 부품 조립을 할 때 쓰는 작업용 깔판은 작업이 끝나면 부품과 함께 그대로 트럭에 실린다. 작업용 깔판이 운반용 깔판 역할을 동시에 하기 때문에 조립 라인의 맨 끝에서 트럭까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부품이 바로 전달된다. 완성된 부품을 운반용 용기에 담아서 지게차에 옮겨 실은 후 다시 트럭에 싣는 과정을 없애 버린 것이다. 이영기 실장은 “이런 노력을 통해 모비스 아산공장의 생산성은 차 한 대에 해당하는 부품을 54초에 한 번씩 만들어 내는 수준까지 높아졌다”고 말했다.

  더 큰 시간 싸움도 진행 중이다. 최근 세계 자동차 업체에선 모듈형 플랫폼(모듈 킷) 경쟁에 불이 붙었다. 지금까지는 비슷한 크기의 차를 하나의 뼈대(플랫폼)에서 만드는 식으로 개발·생산 시간을 줄여 왔다. 하지만 이제는 모듈을 퍼즐처럼 다양하게 조합하는 방식을 통해 대형차든 소형차든 크기에 관계없이 한 플랫폼에서 모든 차를 만드는 쪽으로 연구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아우디·폴크스바겐 등 4개 브랜드를 거느린 폴크스바겐그룹은 그룹 내 모든 차량을 4개의 플랫폼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방식이 보편화하면 신차 개발 기간 단축으로 원가가 최대 30% 줄어든다.

아산=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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