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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메이저(국제석유자본)와 OPEC(석유수출국기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73년「오일·쇼크」의 거센 충격이 약간 수그러져 석유소비국가들이 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75년1윌, 미국의 유태계잡지「코맨터리」(논평)는『석유미국개입의 문제』라는 글을 실었다.
이 글은 앞으로 제2의「오일·쇼크」가 올 경우 미국이 중동에 무력개입을 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비췄다.
몇달후 이잡지는 무력개입의「시나리오」를 또한번 실었다.
이 두번째 글은 유전폭파를 신호로 개시된 미해병대의 「페르시아」만상육에서 시작해서 미국이 중동의 주요 유전들을 점령하고 석유공급원을 서방측과 함께 공동관리하는 과정을「존·웨인」의 영화처럼 활극조로 펼치고 있다.

<해병인가된「포드-키신저」>
뛰이어 서독의 「슈피겔」지는 「프드」대통령과「키신저」국무장관이 미해병대 전투복에 M-16소총을 들고야자수 우거진 「사우디」의 해안에 상륙하는 그림을 표제로 무력개입에 관한 특집을 실었다. 또 「뉴욕·매거진」과 「워싱턴·스타」지도 비슷한 내용의 특집을 냈다.
「워성턴·스타」지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중간에 새로운 전쟁이 일어나면서 「아랍」 산유국들은 제2의 석유금윤조치를 취한다. 전쟁은 10일로 끝나지만 단유조치는 계속된다.
5개월후 미해병대가 상륙, 「사우디」와「쿠웨이트」의 유전을 점령한다. 그러나 작전중에 유전사실이 파괴되어 석유공급은 그후 6개월간 더욱 혼란속에 빠진다.
이에 미국정부는 국제석유청을창설, 중동석유의 공급망을 장악하는한펀 「안보, 유전재건실, 「데러」방지등」의 조치에 필요한 재원을확보한다는 구실로 석유가격 인상을 당행한다.
이와 비숫한 시기에 「키신저」도 『무력개입의 가능성을 배제하지않는다』는 공개발언을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처럼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무력개입설은 이미 그러한 정책대안이 폐기된다음에 OPEC 설득방법으로 미국이 흘려보낸 「협박」에 지나지않았던것같다.
진지하게 침공을 고려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극비로 지켜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OPEC의 「거인화」 과정에서 미국이 보인 입장은 상반된 두갈래의 흐름이었다. 그 하나는 무력침공설이 극적으로 보여준 OPEC 와해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중동산유국의 친소화방지를 위한 OPEC 육성책이다.
「뉴욕·타임스」지는 특히 미국무성이 70년이래 OPEC의 성장을지원해왔다고 주장하고 그 이유로 미 국무성이 가지고있는 중간에대한 최악의 상태의 「시나리오」를 소개하고 있다.
세계전략면에서 미국은 중동에 잘무강되고 국내정치가 안정된 친서방국가들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유가는떨어져도안된다>
그런데 만약 석유가격이 낮아지면 서방에 대한 반발로 「이란」 이 공산주의화해서 「사우디」를 공격하고 소연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친다.
이런 사태가 더욱 확대되면 중간의 모든 친서방세력이「도미노」처럼 무너지고 그 결과대「이스라엘」강경노선의 득새, 대서방석유공급원의 봉쇄가 불가피해지고 따라서 미해병대의 상륙도 불가피해진다.
미국무성에서는 만약 석유가격이 오르지않는다면 강력한 친미세력을 유지하기위해 미국은 거액의 지원을 쏟아넣어야 된다고 보고 OPEC가 유가를 인상한 것은 결과적으로 의회통과가 어려운 거액의원조를 가격변동을 통해 제공한 셈이 된다고 보았다.
더구나 그런 형태의 「원조」는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공동으로 염출한 돈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오히려 다행한 일이라고 계산했을수도 있다.
73년이래 미국이 취해온 OPEC정책이 바로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한 유화책이었음은 이미 입증되었다.
다른 서방국의 입장도 공식으로내세우는 「경악」과는 거리가멀다. 영국 「캐나다」「노르웨이」등이 북해와 「앨라스카」에서 유전을 개발하게된 것은 OPEC가 가격을 급동시킨 덕분에 가능했다.
1일 1「배럴」생산능력을 기준으로 삼으면「페르시아」준의 석유생산에 필요한 투자 액수는 1백「달러」인데비해 북해석유는 2천「달러」나 되기 때문이다.

<앞으론영국이 산유국종장>
73년이전의 1「배럴」당 2·3「달러」의 가격으로는 염두도 못낼 생산단가다. 그래서 영국수상시 80년대가되면 영국「에너지」상이 OPEC의 의장이 될 것이라고농담했고 영국「에너지」상은『OPEC를 최대한 밀어주겠다』고말했던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도 해외석유회사에의 투자가 많고 또 국내 석탄산업의 사양화를 막기위해 유가인상을 감수할만한 댓가로 받아들였다.
중속석유의존에서 탈피하기위한 매채「에너지」개발을 위해서도 석유가격의 인상은 바람긱한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그 인상폭이 서방경제에 큰 타격이될 정도여서는 안된다는 단서가 붙어있을따름이다.
이밖에 자연보호주의자들까지 합세하여 OPEC의 석유가격인상에는 일종의 연합전선이 암암리에 형성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키신저」전 미국무장관이 석유가격인상으로 세계가 들꿇던 75년초에 소비국들의 석유판매가격이 더 내려가지 않도륵 하한선을 정해야된다고 한 주장은 일관성있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포드」전대통령도 그해, 연두교서에서 『석유가격이 이 하한선이하로내려가지 않도록 보호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때 미국측이 계산한 석유가격의 하한선은ⓛ국내석유를 보호하기위해서는 「배럴」당 7「달러」선②대체「에너지」개발을위해서는 12「달러」선이었다.
결국 석유자원도, 대체「에너지」개발능력도 없는 제3세계국가만이 OPEC와 서방이 서로 긁어주는식으로 장난치는동안 극복하기 어려운 부담아래 허덕여 왔다고 볼수밖에 없다.

<「내부의배신」, 서방이보완>
OPEC가 73년 엄청난 위력을발휘한직후 「쿠웨이트」의 한 석유관계자는 『OPEC의 성공에 놀란쪽은 우리다. 우리는 스스로 거인에 대척한 난장이로 알았는데 겪어보니 석유「메이저」나 서방소비국 온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고 뽐냈다.
그러나 이상에서 살펴본 배경을놓고 보면 OPEC의 거인화가 그처럼 단순한 과정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그러니까 「카르텔」이란 내부의 배신으로 깨지게 마련이라면서 OPEC의 와해를 전망했던 석유전문가 「에이돌먼」MIT대교수의 진단은한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부의 배신』을 방지할장치가 OPEC자체의 필요에 의해서뿐 아니라 서방소비국들의 필요에 의해서도 뒷받침되어 왔다는점이다. 결국OPEC는 간혈적인 내분에도 불구하고 계속 석유「카르텔」로 존재할 것이라는 근거는 바로 이점에 있다.[런던=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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