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은퇴 팁] 은퇴 뒤 나를 위한 돈 자축금이 필요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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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서명수

은퇴하는 사람의 뒷모습은 대부분 쓸쓸하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회사 문을 나서는 은퇴자는 별로 없다. 은퇴생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회사 동료나 친구들도 수고했다며 위로를 하는 정도에 그친다. 은퇴자에게 박수를 치며 이젠 쉬게 돼 부럽다고 하는 말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금기에 해당한다.

 어느 날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갈 데가 사라지면 그게 바로 은퇴가 되는 게 직장인의 삶이다. 평생을 바쳐 몸이 부서져라 뛰던 일터를 나갈 수 없게 됐다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냥 넘긴다는 건 너무 가혹하다. 주위에서 은퇴를 축하해 줄 수 없는 현실이라면 스스로를 자축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러려면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약간의 돈이 필요하다. 일종의 ‘은퇴 자축금’이다.

 자축이 아니라 기나긴 은퇴생활을 준비하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는다는 의미에서도 그런 돈의 존재는 유효하다. 이는 퇴직금이나 연금 이런 개념과는 다르다. 퇴직금과 연금은 ‘내 돈’이 아닌 까닭이다. 물론 퇴직금 일부를 쓰지 못할 것도 없지만 여러 사람이 쳐다보는 돈이라 아무래도 제약이 따른다.

 은퇴 전문가들은 은퇴 후 어느 정도 공백기를 갖는 게 좋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실한 노후 준비 탓에 은퇴 후 바로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경향이 강한데 서두르는 일일수록 그르치게 돼 있다. 인생 1막이 끝난 뒤 중간에 쉴 틈 없이 시작한 2막이 잘 돌아갈 리 만무하다. 인생 2막으로 넘어가기 전 1막을 정리하며 휴식을 즐길 여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럼, 은퇴 자축금은 얼마쯤이면 될까. 지난해 은행에 있다가 퇴직한 한 지인은 “현역 때 틈틈이 저축해 2000만원을 모았다. 이걸로 해외여행도 갔다 왔고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다. 은퇴 충격이 서서히 아물고 자신감도 되찾았다. 은퇴 후 자신만을 위해 쓸 돈을 준비하길 권한다.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 그 돈은 존재만이라도 활력소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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