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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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소년시절의 「아인슈타인」 은 좀 멍청했던 모양이다.발육조차 시원치 않았다.말도 더듬거리고,머리도 어두워 보였다.이름마저「돌덩어리」 (아인슈타인)였다.학교선생이 딱하게 여기고 그의양친도 실망하고 있었다.
그 「아인슈타인」 이 하루 아침에 유명해졌다. 세계신문의 「톱」기사에 오른 것이다.
1919년3월 개기일식 (개기일식) 이 일어났을 비로소 그의「상대생이론」 이 실증되었다.
이 논문이 발표된지 무려 15년만의 일. 그무렵 「아인슈타인」은 「베를리」 대학의수학교수였다.
2년후 그는 이것과는 다른 광전효과이론으로 「노벨」상까지 받았다. 언젠가 「아인슈타인」 은 이런 말을 한일이 있었다. 『나의 상대성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세계에 12명밖에 없다. 그러나 이 이론을 설명한 책은 산더미처럼 출판되었다. 』
「아인수타인」 은 자신의 상대성이론을 한마디로 설명한적이있었다.
-「아름다운 여자옆에 앉아 있으면 1시간이 지나도 겨우l분밖에 지나지 않은것 같다.하지만 뜨거운「스토브」옆에 있으면1분이 1시간처럼 생각된다.바로 이것이 상대성원리다. 미덥지않으면 어디 한번 실험해보라』.
이런 「원리」 를응용이라도 하듯 그는 미인과 두번이나 결혼했다. 두번째 부인은 사촌인「엘자」 .그녀는 「상대생이론」 보다는남편의 인품에 더 관심이 많았다.「엘자」 는 「아인슈타인」 의 일상생활을 이렇게 밝힌 적이 있었다.두가지의 원칙이 있다는 것이다.『첫째, 규칙을 절대로 만들지 않는다. 둘째,타인의 의견에 좌우되지 않는다 』
「아인슈타인」의 생활은 정말간소하기 짝이 없었다.다리미질도 하지않은 옷을 예사로 입고 다닌다. 모자는 결코 쓰지않는다. 「버스」를 타고는 휘파람도 불고 노래도 부른다. 도를 할때도 면도용 비누를 따로 사용하지 않는다.
우주의 불가사의에도전하는 과학자였지만 『비누를 여러가지 쓸정도로 복잡한 人生을 살기는 싫다』 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과연 행복을 스스로찾을줄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다.행복은 바로 여기에 있다』 - 그의 행복관이다.
그는 일생을 통해 돈도 명예도 탐하지 않았다. 연구와 「바이얼린」을 켜는것과「요트」를타는일-.그것으로만족했다.
그러나 그의 생애중엔 어두운 그림자도없지는 않았다. 「히틀러」 의 미움을사서 고국을 떠나야 했다.유대인이었던 것도 문제지만「히틀러」의 호전성을 혹독히비난한 때문이었다. 끝내 그는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3월14일은 그의 탄신1세기를기념하는 날이다.백년이 지나도그만한 과학자가 없는것은 그를한결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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