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후보 조부는 순국한 독립투사 문남규 선생 추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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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3일 퇴근하기 위해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을 나서고 있다. 문 후보자는 조부의 독립유공자 여부 확인을 국가보훈처에 요청한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가슴 아픈 가족사이고 또 조부님의 명예가 걸린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문 후보자는 거취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변선구 기자]

국가보훈처가 23일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조부가 일제시대 대한독립단 대원으로 활동한 애국지사 문남규(文南奎) 선생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대한독립단은 3·1운동 후 박장호·조맹선·백삼규 등 독립운동가 560명이 1919년 4월 만주에서 조직한 독립운동단체다.

대한독립단은 국내 진입작전과 남만주 동포사회의 자치를 목표로 했다. “본국에 들어가 혈전(血戰)을 단행하기를 기도하며 외지(外地)에 재(在)하여는 자치를 시행”하는 것을 대한독립단의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이들은 주로 평안남북도와 황해도지역, 만주 등지에서 항일무장활동을 벌였다. 1919년부터 1921년까지 집중적으로 결사대를 조직해 평안남북도의 조선총독부 경찰을 습격하고, 신의주 등지에서 친일세력을 처단하기도 했다.

 문 후보자의 조부로 알려진 문남규 선생은 대한독립단 소속으로 1921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일본군과 전투하던 중 전사했다. 이 같은 내용은 1921년 4월 9일자 독립신문(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에서도 확인된다. 신문에는 “모지방 기관에서 출동한 주모(朱某) 토벌대장 휘하의 1소대가 삭주군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여 수명을 살해하였으나 대원 이선찬과 문남규가 순국하였다”고 적혀 있다.

국가보훈처가 2010년 11월 순국선열의 날 발표한 정부 포상자 명단.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명단에 문남규 선생이 포함돼 있다(왼쪽). 1921년 4월 9일 독립신문(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에는 “토벌대장 주모(朱某)씨 이하 1소대는 삭주군에서 적군과 싸워 다수 승리했으나 이선찬과 문남규가 순국하다”고 적혀 있다(오른쪽).

 국가보훈처는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독립유공자 문남규와 문창극 후보자의 조부 문남규가 동일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국무총리실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문 후보자가 지난 10일 총리 지명을 받은 후 국가보훈처에 조부와 문남규 선생이 동일 인물인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보훈처는 “1921년 독립신문에 보도된 독립유공자의 성명과 후보자 조부의 한자까지 동일하며 독립유공자 문남규의 전사·순국 지역과 문 후보자의 조부 문남규의 원적지가 평북 삭주로 동일하다”고 밝혔다. 또 문 후보자의 부친인 문기석씨가 생전 “내가 일곱 살이었던 1921년 독립운동을 하셨던 아버지가 숨졌다”고 진술했는데, 보훈처는 독립신문에 나온 문 선생의 순국연도와 문기석씨의 증언이 일치한다는 점도 동일인으로 보는 이유로 꼽았다.

 국가보훈처는 2010년 일제강점기 자료와 정보 보고서, 당시 신문자료를 조사해 문 선생의 족적을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2010년 11월 순국선열의 날에 건국훈장 중 넷째 등급에 해당하는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문 선생의 유족이 확인되지 않아 보훈처에서 훈장증을 보관해 왔다고 한다.

 문 후보자는 이날 퇴근길에 자신의 조부의 독립유공자 여부를 보훈처에 확인 요청한 이유를 묻자 “이 문제는 저의 가슴 아픈 가족사이고 조부의 명예가 걸린 사안”이라며 “저희 가족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문 후보자는 “보훈처도 법 절차에 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케이스와 똑같이 공정하게 처리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조만간 보훈심사위원회를 열어 족보와 지역사 관련 자료들을 검증한 뒤 최종 결론을 내린다.

하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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