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인플레」하의물가현실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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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줄곧 오르기만 하는 국제 원자재시세는 필경 저 5년전의 석유파동 때처럼 수입 「인플레」로 이어져 가뜩이나 혼란에 빠져들고 있는 국내 물가체계를 근본부터 뒤흔들 공산이 커졌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시장원리에 기초한 물가안정을 내걸고 각종 가격인상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오늘의 싯점에서 국제원자재가 상승의 충격은 물가재편작업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점이다. 사태를 온건하게 전망하더라도 국제원자재가격은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국제적인 긴축과 이에 따른 경기침체가 진전되면 자연 원자재시세는 안정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견해는 현재의 상황, 예컨대 지금의 세계경기국면을 회복기조로 보는데서 비롯되지 않나 싶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의 경우도 지금의 회복세가 전면적인 원자재가격 앙등을 유발할만큼 수요를 창출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지금 시장은 국제「인플레」와 투기요인에 더 많이 지배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는 결국 세계경기국면이 불투명하고, 특히 「에너지」파동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불안감때문에 파생된 영향이므로 경기국면의 정착이나 불확정요소의 근본적인 불식이 없는한 자원시장불안은 지속될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우리같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가 어떻게 이를 흡수해낼 것인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마르면 수입물가의 대국내물가 영향도는 거의 41%를 넘고 있다. 설령 올해 수입물가가 20%만 오른다고 낙관해도 이것만으로 이미 8% 이상의 국내 물가상승을 유발한다는 계산이다. 이런 상황을 눈앞에 두고도 물가당국은 지난 연말부터 계속 물가체계재편을 이유로 각종 공산품의 가격인상을 연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최근 일련의 물가인상 허용이 어떤 맥락으로 당면한 물가안정과 연결되는지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뿐아니라 국제원자재 시세가 지속적으로 오를 경우 그때마다 끝없이 「재편」작업이 계속되어야하는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물가체계의 개편이, 공산품의 모든 원가상승 요인을 어떤 상황에서도 모두 반영해주는 것으로 가능하다면 물가정책은 따로 존재할 이유가없지 않은가. 산업체계의 재편이나 물자수급, 자원배분의 측면과 연결되지않은 원가중심의 가격정책에 계속 의존한다면 물가는 연중 내내 「현실화」할 수 밖에 없으며, 「메이커」는 기회있을 때마다 언제나 가격인상을 요구하고, 여의치 못하면 생산·출고를 조절하여 품귀소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시장기능의 확대는 시장을 지배하는 각종 힘의 균형이 이루어질때 비로소 가능하다. 때문에 선후없이 가격만 올려준다고 시장기능이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된다.
올들어 두달동안 이미 작년 상승폭의 7할을 넘어선 원자재시세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물가현실화작업을 재검토해야할 단계가 되지않았는가 싶다.
진정한 원가요인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개별 요소가격의 근본적인 안정대책과 적절한 이윤배분 원칙을 먼저 정한 뒤에 현실화작업에 착수해도 늦지않다. 자주 거론되는 수입물가연동제도 이런 사전 준비를 거친뒤에야 현실성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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