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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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양의 해」에 거는 기대는 한결같다. 평화와 안정. 주부도, 가장도 그 마음엔 다름이 없다.
십이간지의 터울을 놓고보면 역사의 변환은 어지럽기만하다. 수많은 조약이 잇달아도 나라 사이의 전쟁은 그침이 없고, 어느 한해도 밝음과 기쁨만이 충만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안락한 삶을 누린다는 「양의 해」도 예외가 없었다. 중동의 6일전쟁이 일어났던 해(1967년)도 그랬고, 세계도처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던 해들도 공교롭게 「양의 해」였다.
우연이긴 하겠지만 세상은 잠시도 조용하고 안락할 겨를이 없었던 것을 알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세계는 그런 혼돈과 불안속에서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또 발전하고 있다. 오히려 그런 속에서 역사는 활력을 찾고 밝은 세계를 지향하는 의지를 갖는것같다. 한인간의 생활주변을 돌아보아도 마찬가지다.
하늘이 내려앉는것같은 절망들도 결국 시간앞에는 무력해진다. 양차의 세계대전은 인류를 종막으로 몰고가는듯 싶었다. 터무니 없는 압제와 전화속에서 인류는 내일을 잃은것 같았다. 그러나 역사의 지평위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한차례의 천둥과 번개에 지나지 않았다.
희망의 빛은 어느 구석엔가 살아있는 것이다.
1919년 기미년은 우리민족사에서 길이 잊혀지지 않는 해이다. 그무렵 우리는 일본총독부의 무단정치에 짓밟혀 문화도, 경제도, 민족의 혈통도, 그 모든것을 잃고 노예로 전락하는것 같았다. 일제의 총칼밑에서의 악착같은 통치는 끝내 우리를 질식시킬 것만 같았다.
그러나 독립과 인간회복에의 열망은 더욱 더 뜨거워질 뿐이었다. 일제의 압박이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의 열망도 강해졌던것이다.
우리 역사상 그해 기미년처럼 온 민족이 맨주먹의 희지만으로 단결해, 불의에 맞섰던 일은 다시 없었다. 약하고 유순한 양도 때로는 맹수와같은 불길을 뿜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 거족적인 운동은 결국 투쟁과 사양으로 끝나고 말았다. 독립에의 길은 오히려 더 멀어지는것 같았다. 그러나 그 정신만은 끈내 쓰러지거나주저 앉지 않았다. 더욱 줄기차고, 더욱 꿋꿋하고, 더욱 뜨거워졌다.
역사가「A. 토인비」는 도전이 있어야 응전이 있고, 그런 의지속에서 인류는 발전한다고 말했었다.
새해를 맞으며 우리는 일상속의 어둡고 우울한 일들도 그런 정신으로 극복해야한다. 평화와 안정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극복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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