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나침반] 윤석화씨에게 윤동주 시집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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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

토요일 한낮에 방송되는 SBS '스타 도네이션 꿈은 이루어진다'는 진행자(박상원)의 이런 말로 문을 연다. 세상은 꿈을 이룬 자에게 그 꿈을 무덤까지 고스란히 가져가라고 속삭이지 않는다. 꿈은 열매보다는 씨앗에 가깝다. 좋은 곳에 뿌리면 열 배 백 배의 결실을 거둔다.

스타에게 내가 읽기(새기기)를 권하는 시집은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다. 그들이 풍문으로 괴로워할 때 나는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서시' 중에서)를 외라고 권한다.

바람에 스칠 수 있는 운명이므로 스타의 행보는 각별해야 한다. 윤동주가 유서처럼 쓴 시 '별 헤는 밤'의 말미는 스타의 최후진술에도 유효하다.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결심하기도 쉽지 않고 결행하기는 더구나 어려운 일을 연극배우 윤석화가 해냈다.(중앙일보 4월 4일자 보도) 이 감동적 '사건'의 시말기(始末記)를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에 이 글을 쓴다.

'스타 도네이션…'(3월 29일 방송)의 해외 입양아 위탁모 체험은 그녀에게 이른바 '눈물로 세수하기'였다. 태어난 부모에게 버림받는 일도 서러운데 태어난 조국에게까지 홀대받다니….

누구나 울 일이지만 울음 후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눈물을 거두자 그녀 앞에 웃는 아기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던 것이다. '마이클'이나 '안토니오'가 될 운명의 아이는 며칠 후 '찬민'으로 그녀에게 다시(영원히) 안겼다.

세 가지 종류의 선행이 있다. 첫째 숨어서 하는 선행, 둘째 남이 보거나 말거나 베푸는 선행, 셋째 남이 볼 때만 하는 선행.

'스타 도네이션…'의 딜레마는 '내놓고 선행하고 싶지 않다'며 정중히 섭외를 거절하는 스타들이 간혹 있다는 사실이다.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내놓고 선행하는 스타들은 다 이중적인가? 그렇지 않다.

선행에도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요즘 라디오에서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말고 자녀 앞에서 책 읽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라는 공익광고를 들었다.

선행도 마찬가지다. 친숙한 사람(스타)이 선행하는 모습을 자꾸 접하다 보면 '저것이 사람의 일이로구나' 하고 자연스레 따라할 가능성(희망의 꽃피우기)이 커진다. 카메라 앞에서만 눈물을 보이고 카메라가 사라지면 눈물은 물론 마음마저 휴지에 싸서 버리는 그런 선행을 이 프로는 사양한다.

MBC 휴먼 다큐 '인간시대' 중에 아직도 기억의 사슬에 꽂힌 작품이 바로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다. 어릴 때 해외로 입양됐던 '수잔'이 거의 30년 후 모국에서 다시 어머니와 상봉하는 내용이다.

시청자는 많이 울었지만 그 후로도 해외입양은 계속됐다. 인간이면 감각과 의식이 두루 발달해야 정상이다. 감각은 극도로 발달했지만 우리의 의식은 그 속도에 훨씬 못 미치는 게 아닐까.

시청자는 스타를 보며 웃고 울기도 하지만 때로 깨닫고 배우기도 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화장(火葬)은 우리에게 낯선 풍속이었다. 산 사람이 살 곳도 부족한데 죽은 사람의 땅은 늘어만 가는 현실. 화장문화가 달라진 건 유명인사들이 줄줄이 화장을 약속하고 실천한 게 기폭제였다.

나는 윤석화의 바람대로 앞으로 해외입양이 확 줄기를 기대한다. (물론 애초에 입양할 아기의 숫자가 줄어든다면 더 좋은 일이다.)

지금 그녀는 온갖 매체의 인터뷰 요청으로 괴롭다고 한다. 그러나 '새 생명의 탄생에 이 정도 고통쯤이야' 하고 잘 견뎌내기를 바란다. 며칠 내 그녀에게도 윤동주의 시집을 선물할 참이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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