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나라당 '稅風' 반성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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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검찰이 이른바 '세풍(稅風)'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이 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과 공모해 23개 기업으로부터 1백66억3천만원을 불법 모금했다는 내용이다. 한나라당 측으로부터 기업체 명단을 넘겨받아 이석희씨가 직접 모금하거나 알선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을 동원한 모금이 사실이라면 한나라당은 반성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 순서다. 국가기관인 국세청을 정치자금 모금 창구로 이용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측이 "대선자금을 이유로 기소한 전례가 없다"며 정치적 해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잘못이다. 정권의 보복성 기획사정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대선자금이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금할 수 있다는 과거 정치의 관행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 시대적.국민적 요구다. 정치권이 검찰 수사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은 한나라당도 입만 열면 주장해온 명제다.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라고 범죄행위에 대해 공소취소를 요구하는 것은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무리한 수사라면 재판과정에서 떳떳이 주장을 펴는 것이 정도가 아니겠는가.

야당이 명분을 잃으면 설 땅이 없는 법이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비밀송금 사건이나 나라종금 의혹, 설훈 의원의 20만달러 폭로 명예훼손 사건 등 산적해 있는 권력형 비리나 정치적 사건마다 한나라당은 철저한 수사를 요구해야 할 입장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부터 처신을 올바로 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개입 여부, 이석희씨의 도피 배후, 다른 연루자들의 범죄혐의 등은 밝혀지지 않아 세풍수사는 아직 미완의 상태다. 공소시효 때문에 수사가 미진한 구석도 있다.

형사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한나라당이 협조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부분이다. 아울러 정치권은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를 위한 제도 개혁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