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자이툰 감군' 한·미 불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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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말 이라크 바그다드의 미 중부사령부 관계자는 깜짝 놀랐다. 이라크 내 24개 파병국이 중부사에 정기 보고하게 돼 있는 병력현황 중 한국군 부분에 '이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3800명선(다이만 항공부대 150명 포함)을 유지해온 자이툰 부대원 숫자가 갑자기 530여 명 줄어든 3270여 명으로 기록돼 있었다. 이 숫자는 중부사가 이라크 현지 한국군 장교들의 보고를 바탕으로 집계한 것이었다.

중부사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받은 미 국방부 관계자는 "한국에 의문(curious)을 품게 됐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는 한국의 병력감축 자체엔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파병국의 자율 권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 사전협의 없이, 또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병력의 7분의 1가량을 줄인 데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본지 보도(4월 7일자 3면)로 이 문제가 불거지자 우리 합참은 "감축 사실을 중부사에 신속히 알렸는데 중부사가 미 국방부에 제때 알리지 않아 오해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명이 맞다고 해도 병력감축 같은 중요 사안을 사후에, 그것도 현지 장교 수준에서만 미국에 통보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방부 차원에서 미 국방부와 사전에 충분한 대화가 오갔어야 했다. 그동안 미국은 한국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발언 등으로 한국이 동맹관계에 어떤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게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워 왔다. 이런 상황에서 돌출한 '소리없는 감축'은 미국의 오해를 부채질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감축은 당초 두 곳에 설치하려던 자이툰 부대 기지를 한 곳으로 통합하면서 인력을 조정한 것일 뿐 다른 배경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측도 합참의 이 같은 설명을 듣고 "의문이 풀렸다"고 수긍해 파문은 진정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출된 한.미 간의 취약한 의사소통.상호불신은 숙제로 남았다.

한국은 틈만 나면 이라크 파병규모'3위'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미국이 이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한다. 그러나 병력 숫자보다는 양국 간에 얼마나 대화가 잘 이뤄지고 협조가 원활한지가 파병의 순위를 가리는 진짜 척도다.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적은 병력을 파견했다. 파병 사실을 목소리 높여 외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미국은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강찬호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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