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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라이벌] (16) 감자탕 - 삼국시대부터 유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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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위 어떻게 선정했나

江南通新은 레스토랑 가이드북『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배한철 총주방장, 롯데호텔서울 무궁화 천덕상 셰프, 식도락동호회 에피큐어 최유식 대표, 음식평론가 강지영씨의 추천을 받아 5개 식당을 후보로 추렸습니다. 이후 후보 식당 5곳을 5월 7일자 江南通新에 공지한 후 일주일 동안 독자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닭한마리감자탕과 이화감자국이 각각 1, 2위로 뽑혔습니다.

라이벌 (17) 해물찜 결과는 6월 25일 발표합니다.

삼국시대부터 유래

돼지 등뼈에 감자·우거지·들깨가루·깻잎 등을 넣고 매콤하게 끓여내는 감자탕. 삼국시대 전라도 지역에서 유래했다는데요. 농사에 쓰이는 귀한 소 대신 돼지를 잡아 그 뼈를 우려낸 국물로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왜 감자탕이냐고요. 여기서 감자는 채소가 아니라 돼지등뼈 부위를 뜻합니다. 이 감자를 넣고 끓인 탕을 감자탕이나 감자국으로 부르는 거죠. 이번 주에 소개할 두 집은 강남·강북이라는 위치 뿐 아니라 넣는 재료도 다릅니다. 하지만 돼지 누린내를 잘 잡아 맛이 깔끔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위 신사동 닭한마리감자탕(먹쇠골)
손님이 맛없어서 못 먹겠다던 감자탕집, 대박집 된 까닭은?

닭한마리감자탕(먹쇠골)은 향이 강한 깻잎·들깨 대신 구수한 맛을 내는 콩가루를 넣고 고기 핏물을 깔끔하게 제거해 국물맛이 개운하다.

“손님이 없어 힘들었대요. 하루이틀도 아니고 5년 가까이 계속 장사가 안되니까 아버지가 가게를 내놓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셨다죠.”

 신사역 먹자골목에 있는 먹쇠골(이하 닭한마리감자탕)에서 만난 이 가게 주인 정필수(60) 사장 아들 정대철(33)씨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이곳은 江南通新 맛대맛 라이벌 1위집으로 선정된 것은 물론 여러 맛집 블로거가 맛집이라며 앞다퉈 포스팅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집이었으니 이 말이 의외일 수밖에. 얘기를 좀더 들어봤다.

 성수동에서 한정식집을 하던 정 사장은 2004년 가게를 접고 신사동에 닭과 삼겹살을 파는 가게를 냈다. 지하철 3호선 신사역에서 가까워 오가는 사람이 많은 데다 가로수길보다 임대료가 저렴해 고른 장소였다. 당시엔 콩나물과 삼겹살을 함께 내는 콩나물삼겹살이 메인 메뉴였다. 가게 앞을 오가는 사람은 많았지만 장사는 안됐다.

 “예닐곱 명이 와서는 삼겹살 2인분만 시키는 거죠. 다들 1차를 다른 데서 하고 오니까 콩나물이랑 술만 시키고 삼겹살은 안시켰대요.”

 분위기가 달라진 건 2008년, 그러니까 군 제대 후 일식집에서 일하던 아들 정씨가 아버지를 돕겠다고 가게에 나오기 시작한 때다. 남편과 함께 일하던 정 사장 아내 건강이 나빠지자 아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아들이 나오면서 메뉴를 바꿨다. 삼겹살 대신 감자탕과 닭볶음탕을 팔기 시작한 거다. 기대가 컸지만 손님 반응은 차가웠다.

 “처음엔 그냥 우리식 대로 무턱대고 팔았거든요. 맛이 없었던 거죠. 오죽하면 손님들이 ‘못먹겠다’고 대놓고 말할 정도였어요.”

 손님 의견을 참고하고 공부해가며 레시피를 바꿨다. 이렇게 3개월쯤 지나자 불만스러워하는 손님이 점차 사라졌다. 거꾸로 “이집 감자탕은 개운한 맛이 나 다른 곳 감자탕과는 다르다”며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생겼다. 손님들 말대로 인기 비결은 깔끔한 국물이었다. 이곳 감자탕은 돼지등뼈를 두 번 삶아 냄새를 제거할 뿐 깻잎과 들깨가루처럼 향이 강한 식재료는 넣지 않는다.

 “감자탕 끓이는 방법은 아마 집집마다 비슷할 거예요. 다만 우리는 깻잎이나 들깨가루를 넣지 않아요. 향이 강한 재료를 넣으면 고기나 육수 맛이 변하거든요. 그래서 우리집 감자탕을 맛 본 사람들이 다들 국물 깔끔하고 시원하다고 말하는 거에요.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 돼지등뼈를 끓여서 기름기와 핏물을 1차로 제거하는 건 기본이예요. 이걸 다시 끓여 기름기를 한번 더 제거한 후 이 국물에 양념을 하는데, 이렇게 하면 국물이 담백하면서 깔끔해요.”

1 주문이 들어오면 미리 삶아 양념한 고기를 냄비에 담아낸다. 2 고기는 핏물과 기름기를 제거한 뒤 양념해 둔다. 3 사람들이 알아보기 쉽도록 메뉴를 간판에 적었는데. 이게 상호로 굳어졌다.

 또 하나의 비결은 콩가루다. 손님이 주문하면 냄비에 미리 삶아놓은 돼지등뼈와 육수, 채소를 담아 내는데 이때 시골에서 직접 재배하고 갈은 콩가루를 넣는다. 이 콩가루가 국물맛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구수한 맛을 내는 비결이란다. 깻잎처럼 향이 강한 재료를 넣지 않는데도 고기 잡내가 나지 않는 건 고기 삶을 때 월계수잎을 넣기 때문이란다.

 “돼지 특유의 잡내를 잡으려고 여러가지 재료를 넣어봤죠. 널리 알려진 커피나 소주도 넣어봤는데 생각만큼 효과가 없더라고요. 이것저것 시도한 끝에 월계수잎과 생강을 주로 넣어요. 된장도 넣긴 하는데 간이 세질 수 있기 때문에 조금만 넣죠.”

 비결은 돼지등뼈에서도 찾을 수있다. 다른 가게에 비해 뼈에 붙은 살이 많다. 당연히 우연이 아니다. 정 사장이 돈이 더 들더라도 살 많고 품질 좋은 고기를 고집하는 덕분이다. 오래 거래한 단골 가게에서 돼지등뼈를 받는데, 단골 가게라도 평소보다 품질이 조금이라도 떨어지거나 무게가 덜 나가면 어김없이 돌려 보낼 정도로 엄격하다.

 비결이 하나 더 있다. 쫄깃한 식감을 내는 삶는 시간이다. 정씨는 “돼지등뼈를 오래 삶으면 살코기가 다 부스러지기 때문에 적당한 시간 삶는 게 중요하다”며 “어느 정도 삶는 지는 비밀”이라고 말했다.

 닭한마리감자탕이라는 상호로 알려져 있지만 가게의 원래 이름은 먹쇠골이다. 2008년 메뉴를 바꾸면서 간판을 ‘닭한마리감자탕’으로 바꿔 달았다. 정씨는 “주변에 식당이 많다보니 가게 이름만 봐서는 뭘 파는지 모를 것 같아 주요 메뉴를 아예 간판에 적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찾아오는 사람들이 닭한마리감자탕을 가게 이름처럼 부르면서 상호로 굳어졌다. 세간에 알려진 이름과 등록된 상호가 다르다보니 오해를 받을 때도 있다.

 “간혹 전날 다녀간 손님 아내가 전화를 하기도 해요. 영수증에 먹쇠골이라고 적혀 있는데 술집 아니냐는 거죠. 감자탕 파는 집 맞다고 말하면, 그제서야 안심하고 끊어요.”

 부자가 함께 가게를 운영하지만 막상 아들과 아버지는 얼굴을 마주할 시간은 별로 없다. 아들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아버지는 오후 6시부터 오전 6시까지 가게를 지키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24시간 내내 장사를 한 건 아니었다. 원래는 오후 6시부터 아침까지만 장사했는데 인근 직장인들이 “점심에도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해 2010년 24시간 열기로 했다. 아들 정씨는 아침 일찍 나와 밑반찬을 만들고 재료 손질을 한다. 주방을 주로 지키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홀에 나와 손님 표정을 살핀다. 정씨는 “맨처음 딱 한 입 먹고 나면 맛이 어떤지 손님 표정에 다 나타난다”고 말했다.

 신사동 대표 맛집으로 알려질 정도로 자리를 잡았지만 가게 이전을 놓고 고민 중이다. 저녁이면 사람이 몰려 줄이 길게 늘어서는데 가게가 좁아 찾아오는 손님을 다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동네에서 문 열 생각은 전혀 없다. 신사동을 주로 찾는 20~30대와 인근 회사 직장인, 주변 가게에서 오는 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10년간 자리를 지켰잖아요. 그동안 찾는 사람이 많아졌고. 여기서 4~5대 계속 이어서 장사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손님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은 기본이죠.”

2위 응암동 이화감자국
세상에나, 돼지 등뼈를 공짜로 무한리필 해준다고요?

4 가게 앞에 무한리필을 알리는 간판이 걸려 있다.

지난달 29일 오전 9시 은평구 응암동 감자국거리. 골목 앞에 맛집 거리라고 쓰여진 커다란 아치 모양 간판과는 달리 거리는 짧았다. 감자국(감자탕)집 간판을 내건 곳은 네 곳에 불과했다. 특이한 건 이른 시간임에도 골목 안쪽 감자국집 대부분 이미 영업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이 거리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두 번째 건물 1층에 이화감자국이 있다. 창문 안쪽으로 아침 식사하는 손님들, 그리고 그 손님들 사이에 30년을 한결같이 지킨 주인 김귀례(66)씨가 보였다. 간판은 그대로지만 주인이 바뀐 식당도 있지만 이화감자국 주인은 예나 지금이나 김씨다. 그는 전남 광주 출신으로 결혼 후 서울에 올라와 지금 가게 자리에서 금은방을 운영했다고 한다. 생각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자 감자국집을 냈다.

 “1980년대에 이 거리(응암동)가 감자국으로 유명했어. 그런거 있잖아. 장충동족발, 신당동떡볶이처럼. 응암동은 감자탕이었어. 감자국집만 10곳이 넘었지. 그 집들이 다 잘됐어. 그래서 나도 따라서 감자탕집을 했는데 잘되더라고.”

2 감자탕이 나가기 전에 서비스로 주는 파전. 3 응암동 감자국거리 입구. 전성기 땐 10곳이 넘기도 했지만 지금은 4곳만 있다.

 응암동 감자국거리가 왜 유명해진걸까. 응암동 대림시장 주변에 돼지뼈를 푹 고와 육수를 만들고 그 육수에 돼지 등뼈와 감자 등을 넣고 끓이는 감자국 집이 등장했다. 이게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고 인기를 얻자 주변에 감자국 파는 음식점이 하나 둘 늘었다. 이화감자국도 이 중 하나다. 가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자국을 끓였다. 김씨는 가족에게 해주던 방식대로 감자국을 만들어 팔았다. 고기 삶은 국물 기름을 깔끔하게 제거하는 방식 말이다.

 “맛의 비결? 육수랑 고기 아니겠어. 특히 육수가 중요해. 사실 고기 삶는 거야 뭐가 다르겠어. 생강이랑 된장, 소주 넣고 삶아서 냄새 잡으면 돼. 그런데 이 고기 삶은 물을 그대로 쓰면 기름기도 많고 텁텁해. 우리 감자탕은 기름기를 잘 제거해서 개운하고 담백하지. 그게 차이야. 기름 제거하는 법, 그건 비밀이야.”

 고기는 웃돈을 얹어주고라도 살 많이 붙어있는 부위만 쓴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김씨 감자국을 맛보기 위해 손님 발길이 이어졌다. 저녁 때면 개운하고 칼칼한 국물에 술 한 잔 하려는 회사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다른 감자국집이 비어도 이곳엔 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찾아오는 손님의 수가 감당하지 못할만큼 많아지자 90년대 중반 원래 건물 뒷편에 별관을 하나 더 만들었다.

 이곳엔 감자국집이 몰려있는 만큼 감자국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감자국 맛 품평에 다들 일가견이 있으니 식당 간 경쟁은 그 어느 지역보다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차별화로 경쟁력을 키웠다. 이 중 하나가 파전이다. 감자탕 익는 동안 지루해 하는 손님을 위한 먹거리를 고민하다 파전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 거리 다른 감자국 가게도 모두 서비스로 파전을 내놓고 있다.

1 이화감자국은 웃돈을 주고라도 살 많고 뼈대 큰 고기를 구입한다.

 레시피도 차별화를 꾀했다. 콩나물과 쑥갓을 넣은 게 대표적이다. 콩나물을 넣는 건 국물 맛을 개운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해장하러 오는 사람들이 특히 좋아한단다. 또 이 동네에서 최초로 90년대에 24시간 영업을 시작했다. 신촌·홍대뿐 아니라 이태원 등에서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신 사람이나 술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아침에 해장하거나 밥 먹으러 오는 걸 눈여겨 본 것이다.

 “어느날 보니까 해장하려는 사람들 탄 차가 여러 대 오더라고. 그 사람들 받다보니 하루종일 문을 열게 된 거지. 우리가 하니까 다른 가게들도 다 따라하더라고.”

 또 6년 전부터 무한리필을 시작했다. 감자나 국물이 아니다. 고기를 더 주는 것이다. 다른 가게에 가면 고기 세 대에 1만원이 넘는 돈을 받는데 이곳에선 기본만 시키면 달라는 대로 고기를 계속 준다. 김씨는 사실 전부터 푸짐한 인심으로 유명했다. 고기 좀 더 달라는 손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거다.

 “일단 우리 가게에 왔으면 배불리 먹고 가야지. 그냥 보낼 수 없더라고. 누군 주고 누군 안 줄수도 없잖아. 물론 기본(인원수에 따른 주문)은 시켜야지.”

 감자국집 사이에선 제일 작은 소(小)자는 대부분 2만5000원을 받고 냄비엔 돼지뼈 네 조각을 담아주는 게 일종의 불문율처럼 정해져있다. 김씨는 넉넉하게 담아내려고 냄비부터 바꿨다. 다른 가게보다 1.5배 큰 냄비에 처음부터 돼지뼈 서너 개 정도를 추가로 담는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응암동 감자국거리는 과거 명성을 잃었다. 다양한 먹거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김씨 가게를 찾는 손님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전보다 돈을 덜 벌 텐데도 그는 여전히 무한리필을 고집한다.

 “장사 안 된다고 주던 걸 안 주면 안되지. 손님한테 그러면 안돼. 나는 아이들도 다 컸고 큰 돈 들어갈 일이 없어. 내 용돈이나 벌면 돼. 그러니까 부담없지.”

 30년 세월 동안 김씨는 할머니가 됐다. 20대에 친구들과 찾던 대학생과 회사원이 이제 자기 자녀 손을 잡고 온다. 손님들은 예순을 훌쩍 넘긴 김씨를 ‘이모’라고 부른다.

 “손님들이 다 날 이모라고 부르잖아. 단골이거든. 지나가다 들르는 뜨내기 손님이 아니라 꾸준히 오는 사람들이야.”

 아이와 함께 오는 손님을 위해 지난해엔 별관에 놀이방까지 만들었다. 넓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좋아한다.

 “우리 가게는 30년 전이랑 똑같아. 리모델링도 안했어. 그런데 단골이 아이를 데리고 오니까 놀이방은 필요하겠더라고. 이럴 땐 내 고집만 내세우면 안돼. 시대가 변했으니 나도 따라야지.”

글=송정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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