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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말리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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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비즈니스맨을 모신다는 뜻의 초상(招商)은행은 중국을 대표하는 시중은행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전혀 엉뚱한 상황에서 이 이름이 등장하곤 한다.

 산부인과 의사가 진료 장갑을 벗으며 “초상은행입니다”라고 말했다면 그건 “축하합니다. 공주님입니다”란 뜻이다. 그렇다면 남자아이는 뭐라고 표현할까. “네, 건설은행이군요.” 이런 비유가 유행하는 건 결혼을 둘러싼 중국의 세태와 관련 있다. 집과 승용차는 신랑이 준비해야 할 필수품이다. 신부 측의 부담은 결혼식 비용 정도다. 그러니 사내아이를 낳은 부모는 그 순간부터 미래의 아들 결혼자금 마련하느라 허리 휘게 일(건설)만 해야 하고, 딸 둔 부모는 초상은행에 수익률 높은 만기 20~30년짜리 예금 상품을 들어 둔 셈이 된다.

 재미있는 표현이긴 하지만 절대 웃을 일이 아니다. 베이징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대졸 예정자가 바라는 초임은 3680위안, 우리 돈으로 따지면 약 60만원이다. 그 정도 급여만 보장해 주면 기꺼이 취직하겠다는 희망사항이 포함돼 있다는 뜻이니, 실제로 받는 초임은 훨씬 더 내려간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베이징 아파트 값은 서울 뺨친다. 변두리 아파트의 분양가는 ㎡당 2만8000위안대, 다시 말해 맞벌이 부부가 한 푼도 안 쓰고 10년 넘게 모아도 30평형짜리 아파트 한 채를 못 산다는 결론에 이른다. 더구나 이는 부동산값 상승률과 임금 상승률의 격차를 무시한 단순 계산이다.

 그럼 결혼할 때부터 집을 고집하는 중국인의 전통 관념에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원래 젊은 부부란 단칸방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냐고. 그런데 이건 중국에선 곤란한 일이다. 임대차보호 제도는커녕 개념조차 희박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갑작스레 “집이 팔렸다”며 계약 해지를 통보하는 게 중국에선 낯설지 않다. 그러니 결혼할 때쯤이면 자기 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집과 차는 물론 결혼식까지 포기하고 혼인신고만 하고 사는 이른바 ‘뤄훈’(裸婚) 커플도 있다지만 여전히 예외적인 현상일 뿐이다.

  결론은 뻔하다.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자력으로 결혼할 수 있는 젊은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 자녀 소황제들의 부모 의존 현상도 문제지만, 인생의 시작부터 부모의 재력에 따라 결정되는 현상이 사회주의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들을 위해 집을 사 주고는 대출 상환 부담 때문에 나머지 일생을 ‘팡누’(房奴), 즉 ‘집의 노예’로 살아가는 부모도 허다하다.

 이런 현실이 꼭 중국만의 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도 ‘88만원 세대’에 이어 연애도, 결혼도, 아이도 포기한다는 ‘삼포 세대’란 말이 등장할 지경이니 말이다. 어느 쪽이 더 심한 건진 모르겠지만 두 나라 모두 ‘결혼 말리는 사회’라 불릴 만하다. 가족공동체의 형성조차 가로막는 사회라면 그건 뭔가 크게 잘못된 사회다. 세상이 결혼한 소수의 위너들과 짝을 찾지 못한 다수의 루저들로 구성된다고 생각해보라. 끔찍하지 않은가.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