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아파트」범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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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수정「아파트」살인강도는 죽은 지희양의 자가용 운전기사였단다. 아버지는『설마 한집안 식구 같던 그 사람이?』하며 말끝을 맺지 못했다고 한다.
범인의 말로는 지희양은『아저씨가 그럴 수가…』하며 힐책했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자가용 운전기사들은 단순한 운전사가 아니다. 그는 안주인을 위한 만능 기사요, 주인의 비서요, 어린이들의 소꿉친구이기도 하다. 「보디·가드」일수도 있다. 한마디로 한 식구나 다름이 없다.
이름도 운전사에서 기사로 바뀌어진지 오래된다. 그렇던 그가 어떻게「아저씨」하며 따르던 주인집 어린 딸을 냉혹하게 죽일 수 있었는지 정말 지희양의 큰오빠처럼『믿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 놀랍게도 범인 최는 태연스레 병원의 영안실에도 들렀고, 또 살해 현장에 돌아가「아파트」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죄와 벌』의「라스코리니코프」는 살인을 오래 전부터 계획한다. 그에게는「만인에게 해롭게, 자기도 왜 살고있는지 알 수 없는」인간의 돈을 뺏어서 훌륭한 일에 쓴다는 떳떳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토록 냉혹한 그도 살인을 저지르자마자 견딜 수 없는 후회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경찰에서 노파 살해 소식을 듣자마자 실신할 정도로 심약해진다.
범인 최는 살해의 의사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순간적인 범행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망 다니는 지희양을 쫓는 동안에 얼마든지 망설일 순간도 있어야 했다.
그런 일이 이번 범인에게는 전혀 없었다.
뭔가 크게 도덕적인 불감증 환자였던게 틀림이 없다.
범인은 틀림없이 범행의 현장에 되돌아오게 마련이라는 얘기가 있다. 양심의 가책을 받기 때문이라고 심리학자들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범인은 그런 숨은 이유도 없이 현장을 찾았던 모양이다.
그나마 범인이 제 발로 잡혀「아파트」주변의 공포를 덜어주게 된 점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성해야 할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다.
지희양의 죽어 가는 어린 몸을 안고 어머니가「아파트」앞에서 갈팡질팡 할 때 아무도 돕겠다고 나선 사람이 없었다.
그렇던 이웃들이 자위책 강구에는 제일 빨랐다는 얘기는 우리를 크게 슬프게 만들어 주고있다.
또한 작명가들도 조심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이상하게도 강력범들 중에는「갑수」란 이름이 많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석채란 이름의 흉악범은 극히 드물었다. 이름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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