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잃은 가로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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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도심의 가로수에 가을이 물들고 』
어느 시의 한 구절이다. 물론 단풍진다는 얘기다.
그러나 가을이 와도 도심의 가로수는 가을을 외면하고 있다. 한창 곱게 단풍져야할 서울의 나뭇잎들이 거무스레하게 썩어만 가고 있는 것이다.
파리에서 쿵크르드 광장에서부터 에트와크 광장에 이르는 근 2천m의 거리는 프랑스 사람들이 세계제일 아름답다고 뽐내는 샹젤리제 거리다.
길폭이 1백m가 넘는 이 거러 양쪽에는 구경거리도 많고 꽃도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중에서 가로수가 가장 부럽다.
이 거리가 생기기는 16세기초. 여왕의 산책길을 만든게 처음이었다. 그때 길가에 플라타너스와 마로니에의 가로수를 함께 심었다. 그러니까 3백년 묵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특히 10월이 되면 황금색으로 빛나는 것이다.
이 가로수들이 파리의 공기를 맑게 해 주고 있다. 예전에는 파리에는 연지대가 더 많았다.
20세기초에는 파리에 개인소유의 정원만도 6백40㏊나 되었다. 그게 지금은 3분의1로 줄어들었다. 샹젤리제의 마로니에도 예전만큼 곱지 않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파리 시 당국은 적극적으로 가로수를 살리자는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연지대가 30%이하가 되면 나무도 살기가 어려워진다. 우선 지표의 온도가 급상승한다.
그러면 특히 여름에 상승기류가 발생하여 주변의 오염공기를 도심에 더욱 끌어드리게 한다.
이리하여 직물들이 결만이 난다. 그러면 또 사람도 살기 어려워진다.
대기중의 산소는 보통 21%나 된다. 녹지대가 30%이하가 되면 산소도 줄어든다.
보통 혈액중의 적혈구 수는 lcc중에 5백만개라고 한다. 산소가 줄어들면 그 수효가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또 혈액의 점성이 높아져서 고혈압 동맥경화동의 도시병이 늘어난다.
서울의 가로수로부터 가을을 앗아간 주범은 뭇 차량들이 뿜어내는 아황산 가스란다.
보통 승용차 1대가 5시간 달려 석유 깡통 1개의 가솔린을 쓰면 약45㎏의 산소를 앗아간다.
그것은 1백평방m의 숲이 하룻동안에 뿜어내는 산소의 양과 맞먹는다. 그것은 또 어른 45명이 하루종일 호흡하는데 필요한 양이기도 하다.
이래서 로스앤젤레스 시에서는 대기중의 산소가 2%나 모자란다고 야단이다. 그러나 그 곳에는 매연버스는 없고 녹지률도 30%가 넘는다.
서울의 가로수는 모두 죽어가며 있다. 은행나무만이 아직 성하다. 우리는 그저 은행이나마 튼튼하기를 바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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