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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열등의식 벗고 「비관」서 「낙관」으로|이규동(경제평론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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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앙일보가 창간 13주년 기념으로 조사한 국민의 생활의식조사 결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흥미롭다.
전체적으로 보아 국민의 생활의식은 밝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열등의식에서 차차 벗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것을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58.4%에 이르고 있어 비교적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더우기 앞으로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76.7%에 이르고 있어 비관적인 정신상황에서 낙관적인 쪽으로 돌아서는 경향이다. 이러한 낙관적인 전망은 부력에 대한 기대와 명예를 쫓는 직업관에도 반영되고있다.
사회적 성공의 척도를 부력으로 보는 남자세계에서는 단연 부를 지향하는 실업가와 기술자를 장래에 선택해야 할 직업으로 보고있다. 부력을 얻고 나면 명예를 얻고자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적인 욕망서열이라면 여자들이 의사·학자·외교관을 직업으로 희망하는 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비록 오늘의 생활이 넉넉한 편이라는 사람은 23.4%에 불과하고, 나머지 76.6%는 빠듯하거나 모자란다고 하지만 그들이 멀지 않은 장래에 여유 있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차 있다는 것은 그 동안의 개발성과에 대한 신뢰도를 뜻한다고 할 것이다. 더우기 노력한 만큼 응분의 대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60.4%에 이르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경제질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중요한 시사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고용수준이 높아지면서 인간대접을 적어도 직장에서는 받기 시작한 것이라고 느끼는 모양이다.
생활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과 직장에 있어서의 인간대우가 좋아지는 것은 경제성장의 필연적인 성과라고 하겠으나 시민들의 주요한 기쁨이 가정에서의 단란한 생활에서 찾아지는 것은 소시민적 생활에로의 몰두하는 측면에서 반드시 건전한 것이라고 만은 할 수 없다.
나만의 행복, 나만의 부, 나만의 안일이 사회적으로 결코 건전한 사고일수는 없다. 이웃과의 사교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불과 4.7%밖에 안 된다는 것은 국민총화의 정신적 구조와 기반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이사회의 연대의식의 붕괴가 너무나 지독했던 것이 아닌가하는 반성의 자료가 될 듯하다.
단란한 가정에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을 경계하는 눈초리도 예민해졌다. 이 즐거운 가정을 소리 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물가고는 최대의 사회적인 관심사로 등장했다. 그래서 국민의 58.5%는 정부가 물가고를 시급히 해결해 주어야 할 당면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흔히 「인플레」를 경제학자들은 「정책의 고의적인 실책」으로 보기도 한다. 정치적 요소 때문에 「인플레」수습을 위한 경제적 수단의 선택을 회피하는 경향을 그렇게 표현하는 경제학자들은 물론, 따뜻한 안방에 스며드는 찬바람을 본능적으로 노리는 시민들이 「인플레」를 반가이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적으로 가장 큰 관심사는 「인플레」요, 정부가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은 「인플레」이고, 또 사적으로 가장 불안하게 느끼는 것도 「인플레」이라면 당연히 물가정책에 대한 불만은 높을 수밖에 없다. 물가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44.5%에 이르고 있는 반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5.3%에 불과하다. 물가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너무나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경제정책에 장기를 자랑하던 정부에는 무언의 경고인 듯하다.
단란하고자하는 안방에서 바라보는 바깥은 매우 불만스러운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는 비교의 고민 속에 빠져있다는 일반적인 명제에 맞아떨어지듯 빈궁격차가 제1먼저 고쳐져야 하겠다고 느끼는 사람이 국민의 반수에 이른다는 것은 나를 기준해서 바깥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뜻한다.
단란해야할 가정에 무언의 압박을 주는「인플레」다음으로 국민을 괴롭히는 것은 교육비증가· 주부식비증가· 세금이다.
괴로우면 당연히 불만스러운 것이며 그 불만스러움은 무리하게 돈 들여도, 또 재수해야하는 불만, 과외하지 않고는 일류학교에 넣을 수 없는 불만, 그래서 치맛바람이 일어나야 하는 낭비가 원망스럽다.
교육제도에 대한 반성과 「출세는 곧 치부의 지름길」이라는 삐뚤어진 교육관의 시정이 없이 그러한 불만은 해소되기 힘들 것도 같다.
주·부식비의 급증은「인플레」가 따뜻한 안방에 찾아드는 첫 손님이요, 매일 찾아오는 손님이므로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으나 안방마님의 바가지 때문에 「인플레」에 대한 불만이 남자 쪽에서 더 거세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들 남자들은 국세를 내고 나서 늘어나는 안방세금을 물기가 더욱 힘드는 모양이다.
오늘의 상황에서 정치문제를 자세하게 설문했더라면 크게 관심을 집중하는 국내정치문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겠으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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