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 벌에 풍년이 익어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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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극심한 봄 가뭄으로 모내기철이 막바지에 들어선 6월 상순까지 전국 논은 45%밖에 이앙을 못했었다. 그래서 영 글러버린 듯하던 올해 벼농사였지만 이제는 작년 수준을 상회하는 대풍을 보일 전망이다. 우리 나라의 제일 가는 곡창 만경 평야에 익어 가는 벼의 물결이 풍년을 실감케 한다.
실제로 8·15 작황을 기준 한 올해 추곡예상 수확량은 4천4백여만섬으로 작년의 실 수확량 4천 1백 70만섬을 2백만섬 이상 넘어서고 있다는 당국의 추정.

<다수확 신품종 확대재배>
3개월을 끈 봄 가뭄과 장마철 폭우에도 이처럼 엄청난 대풍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자연의 도전과 인력부족 등 어려운 여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이긴 농민의 의지와 온 국민의 협력, 그리고 다수확 신품종의 확대재배라는 영농구조의 개선으로 요약된다. 6월 24일까지의 가뭄 비상대책기간 중 동원된 공무원·학생·예비군 등 인원은 연 3천 7백 46만 명. 여기에 중장비 1만 1천대, 양수기 2백 28만 9천대, 각종 지원자금 4백여원이 투입됐다.
다수확 신품종 벼를 심은 면적은 작년의 66만 정보에서 올해에는 93만 2천 정보로 27만여 정보가 늘었다. 지난해 신품종의 단보 당 수확량은 평균 5백 33kg으로 일반 품종의 4백 11kg보다 1백 22kg이 많았다.
이처럼 수확량이 많은 신품종의 재배면적이 27만여 정보나 늘어남으로써 쌀 수확량은 33만t(2백 30만섬)의 증수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올 들어 정부의 농지보전 및 개발촉진으로 1만 정보의 논이 늘어 35만 섬의 증수요인이 가산됐다. 그러나 농민의 피땀으로 이룩한 대풍은 이제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병충해 피해 3%쯤 늘어>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병해충 피해 때문이다. 5일 현재 전국의 병해충 발생면적은 누계 78만 7천 3백 정보. 작년 같은 기간의 76만 2천 2백 정보에 비해 3%가 늘어났다.
특히 병해충 피해에 강하다고 알려진 신품종에 도열병과 벼멸구가 대량발생, 도열병은 작년보다 3·5배가 많은 8만 2천정보, 벼멸구는 2·6배 많은 19만 9천정보가 피해를 보고있다. 「노풍」을 심은 면적 17만 정보 중 35%에 달하는 6만여정보가 목도열병에 걸려 적지 않은 감수가 불가피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애써 이룩한 대풍을 병충해로부터 지키는 일이다.
15만정보 만경 들에도 풍년을 지키기 위해 땀 흘리는 농민들의 일손이 바쁘다.
전북 김제군 죽산면 서포리 서포 평야에선 오늘도 배재봉 면장의 지휘아래 농민·민방위대 2백여명이 동력 살분무기 30대를 동원, 온종일 농약을 뿌리고 있다.
올해 1만 8백평의 논에 밀양23호를 심었다는 김제군 죽산면 죽산리의 나원균씨(24)도 단보 당 9백 15kg의 생산을 목표로 농약분무기를 놓지 않고 있다.

<「노풍」도 도열병 극복에 총력>
32농가에서 10정보의 논에 밀양 23호를 재배한 김제군 김구면 집단재배단지(단장 양규봉·37)도 단보 당 8백 5kg을 목표로 전 농가가 들에 나와 농약을 뿌리고 새를 쫓으며 풍년을 기원한다.
전북도는 올해 16만 5천 8백 정보의 논에 모내기를 실시, 단보 당 4백 81kg씩 쌀 5백 88만 6천섬을 생산키로 했었다.
이는 사상 유례없는 풍년으로 기록된 지난해의 5백 54만 8천섬보다 33만 8천섬이 많은 양.
8월 중순의 작황조사 때는 기상조건이 좋아 이보다 16%이상이 증수될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한 병충해로 12만 2천정보가 피해를 보고 3만 2천여정보에 재배한 노풍은 도열병 피해로 실농하는 사태까지 빚고 있다.
병해충이 이처럼 늘어나는 것은 7, 8월 계속 내린 비와 높은 기온으로 병해충 발생에 호조건을 갖추게 된 때문.

<제대로 대가 받았으면…>
농수산부는 병충해 방제를 위해 올 들어 모두 5천 9백t의 농약을 확보, 이중 5천 2백 32t을 연면적 9백 80만 정보에 살포했다. 한 논에 평균 8차례나 농약을 뿌린 셈이다.
정부는 예년에 볼 수 없게 병충해가 많이 발생, 일부 농가에서 많은 피해를 보았지만 풍년을 지키려는 농민들의 정성과 노력이 엉긴 만큼 당초 예상했던 수확을 올리는 것은 무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해야할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농민의 피땀 어린 노력이 수확기에 정당한 대가를 받도록 해 주는 일이다.
추곡수매가는 물가 상승이라는 측면만 볼 것이 아니라 농민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농사를 짓겠다는 의욕을 불어넣어 주는데 중점을 두어 결정해야 할 것이다.

<글 신성정 기자, 모보일 기자>

<사진 이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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