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새 서한집 영서 출간-17∼41세 때 친구·가족·연인에 보낸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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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구 문명의 몰락상을 남다른 절박감을 가지고 의식한 「카프카」문학의 이해에 도움이 될 그의 서한집이 최근 영국에서 영역판으로 발간되었다. 「카프카」가 17세 되던 1900년에서 그가 결핵으로 사망한 1924년 사이 그가 「프라하」의 문인들·가족·출판사 및 무수한 연인들에게 보낸 편지들이 여기에 수록되어 있다.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가 출간된바 있지만 화제가 제한되어 있어서 작품과 관련된 「카프카」의 내면세계를 드러내 보이는데는 미흡했었는데 이번 서한집으로 그런 아쉬움이 해소된 셈이다.
평자들은 이 서한집은 「카프카」의 천재가 다른 작가에서처럼 나이와 함께 성숙한 것이 아니라 어릴적부터 갖고 있던 천부의 재질이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다.
즉 그가 17세에 쓴 편지에서 이미 『변신』이나 『성』과 같은 작품 속에 담긴 기발한 「이미지」와 독특한 표현방법 등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편지 속에 든 「카프카」의 생각의 편린을 살펴보자.
▲문학=『인간이 모두 느끼고 있는 열등감이란건 별게 아니다. 집주인의 발짝 소리를 듣고 절박해서 이리저리 도망하는 쥐의 꼴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여자 쪽으로 도망가고 나는 문학 쪽으로 도망가는 것이다.』
▲고향=『집에서 떠나있으니 늘 고향에 편지 쓰지 않을 수 없게된다. 나의 고향이란 것이 이미 오래 전에 영원 속으로 흘러가 버렸다고 해도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편지 속의 글이라는 것은 섬의 가장 높은 곳에 올린 「로빈슨·크루소」의 깃발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글을 쓴다는 것=『나의 온몸이 낱말 하나 하나에 대해 경고를 하고 낱말은 낱말대로 내가 종이 위에 쓰기에 앞서 제가 먼저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살핀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악마를 섬기는데서 얻는 달콤한 보상이다.
그것은 자연 속에 잠재해 있는 어두운 영을 들추어내는 작업이다.
사람은 기억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쓴다. 마치 글이 훌륭한 등산가나 광부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글이 산봉우리나 산의 내장 속에 든 보물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노벨」상=『힘도 들이지 않고 엄청난 양의 가래를 쏟아 놓고 나니 혼미한 머릿속에서 이만한 양을 그토록 쉽사리 창작했으니 「노벨」상 감이란 생각이 스쳐갔다.』
▲질병=『결핵이란 따로 이름을 지어 부를만한 특성이 있는 병이 아니라 죽음 자체의 균에 지나지 않는다.』
「카프카」는 책이라는 것이 『내가 사는 성안의 낮선 방의 열쇠와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에 출간된 서한집은 「카프카」문학에 바로 그런 열쇠가 될 것 같다. 【런던=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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