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러시아워」없는 싱가포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싱가포르에서 금창태논설위원】「싱가포르」는「아시아」에서 도로교통「시스팀」이 가장 잘돼있는 나라다.
면적 5백84평방㎞로 서울보다 43평방㎞가 작은 땅덩이에 서울의 2배인 28만2천9백69대의 각종차량이 굴러다니고 있는 곳이「싱가포르」다. 그러나「싱가포르」에는「러시아워」의 숨막히는 교통 혼잡이 없다.
그런데도 자가용족들에게는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또한「싱가포르」의 교통체계다.
「싱가포르」의 자가용족들은 자가용을 갖고도 아침 출근길이 언제나 바쁘기만 하다.
늑장을 부리다 상오 7시30분이 지나버리면 직장이 있는 도심지로 들어가는데 꼼짝없이 8백원씩의 자동차특수통행료를 물어야하기 때문.
「싱가포르」에서는 휴일을 제외한 평일 상오 7시30분∼10시15분까지 2시간45분 동안의 「러시아워」에는 교통량이 집중되는 도심지 일정구역에 대해 소형승용차 진입을 제한하고 있다. 이른바 ALS제도 (Area Licensing Scheme)이다.
이제도가 적용되는 제한구역은 6백20㏊의 중심업무지구. 서울의 중구에 약간 못 미치는 넓이다.
모든 소형 승용차량은「러시아워」에 제한지역을 통하기 위해서는 통행료를 내든지 아니면 승차정원(「택시」의 경우 4명)대로 빈자리 없이 사람을 태워야한다.
예외가 인정되는 것은 군용 및 경찰차량과 위급 환자용「앰뷸런스」뿐이다. 장관이라 해도「러시아워」의 비좁은 도로에 승용차를 독차지하고 등청하는 기분을 내려면 에누리없이 통행료를 내야한다. 도심지로 들어가는 22개통행로 입구에는 감시초소가 설치돼「워키토키」와「스티커」(빨간딱지)를 든 교통경찰관들이 위반차량을 가차없이 잡아낸다.
이제도 실시 전까지 아침 출근 때마다 5만5천여대의 소형승용차가 한꺼번에 몰려 서울 뺨치는 정체와 혼잡을 빚던「싱가포르」도심이 통행제한조치 이후에는 소형차량이 2만7천여대로 반 이상 줄어들었다.
어느 나라 없이 도시교통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러시아워」의 교통집중현상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시민대다수가 이용하는 대중대량교통수단의 소통에 치명적 방해가 된다. 「싱가포르」정부는 ALS제도의 실시로 교통량의 시공적 불균형을 완화하고 소통을 원활히 하는데 성공했다.「싱가포르」의 교통정책은 철두철미「대중교통수단 우선 원칙」에 바탕을 두고있다.
이 나라의 도심 주요간선도로는 모두가 일방통행이다. 일방통행로의 좌측차선은 황색 선으로 구분된「버스」전용노선.「버스」이외의 차량이「버스」노선을 침범하면 자그마치 10만원이란 가혹한 벌금을 물게된다.
이 때문에 교통량이 집중하는「피크·타임」에도 같은 도로 위에 차선하나를 경계로 한「버스」전용노선은 한산하기만 하다. 이런 면에서「싱가포르」는「버스」의 왕국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버스」를 이용하는 서민대중도 콩나물「버스」에 시달리거나 짐짝 취급을 당하지 않는다.
「싱가포르」에서는 누구나 새 승용차를 구입하려면 반드시 사려고 하는 새차와「엔진」용량이 동일한 노후차 한대를 사서 폐차시키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폐차값은 통상 새차값의35∼50%선.
따라서 자가용 소유자의 부담은 그만큼 무겁다. 그대신 자가용 증차가 억제되고 노후차 대체에 따른 유류절약·공해방지·사고율저하라는 부수적 효과를 힘 안들이고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같은 제도를 시민생활의 규범으로 존중하는 질서의식의 정착이다. ALS제도가 아무리 합리적인 것이라 해도 그것을 지키는데 예외가 인정되거나 위반을 하고도 돈 몇푼 접어주고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요소가 배제되지 않는 사회라면 그 제도의 효용성은 살려나갈 수 없을 것이다.「싱가포르」의 교통「시스팀」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것도 제도자체의 우수성보다도 질서 위에 행세하는 특권의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상황에서 알아야할 것 같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