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지금우리는 어디에…신 중류·신 상류(하)|「대담」이호철(47·작가) 조용배(38·중소기은 통계조사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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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호철=요즘 중산층이니, 월급쟁이·중류층, 이런 말이 점점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데 서로 그 의미가 좀 다르겠지요.
나는 봉급쟁이라면 일제 말 내가 어렸을 때「운전사」가 얼른 생각나요.「하이칼러」라고 할까요, 머리에「찌꾸」바르고 눈도 안 나쁘면서 도수 없는 안경 끼고 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간호원이나「버스」차장, 어업 조합서기, 은행원 같은 사람들로 그 당시로는 상당히 괜찮게 보였지요.
그리고 해방 후 이북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월남을 했어요. 그런데 월남하고 보니까 이북에서 중학교나 들어가서 까지고 내노라 하는 친구들은 다 서울로 왔고 이런 사람들이 하나같이 억척같이 돈을 벌어 오늘의 중산층으로 된 사람이 많아요.

<가로채서 번 돈들>
▲조용배=「중산층」이라는 말은 쉽게 써도 실제로 우리사회에서 두껍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중류층, 봉급생활자정도의 중류층과는 개념상으로 차이가 있겠는데『당신 같으면 중산층이 아니냐, 집도 괜찮고 월급도 안정됐으니까』하면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이 안 들거든요..
▲이=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이라면 글쎄요, 아무래도 60년대 중반부터 생긴 것이 아닐까요.
그전에야 봉급으로는 생활이 안되고 원조「달러」나 과외수입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니까 도시적인 기준에선 월급쟁이나 중류층이라고 말할 수 없죠.
▲조=그런데 막상 우리 중산층이라고 하면 부동산투기로 남들은 10년, 20년 걸려 장만하는 재산을 한건, 두건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극히 일부라고 봅니다.
▲이=그러나 그 일부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기 때문에 문제 아닙니까. 나도 저런 중산층이다 착각도하고, 나는 저 사람들 보다 훨씬 못하다하고 불만과 좌절도 안겨주니까요.
▲조=맞습니다. 내가 정당하게 벌어 착실하게 모아서 생활터전을 안정시킨 사람이 중산층이어야 하는데 우리사회에선 그런 사람보다 쉽게 어떤 의미에선 남에게 갈 돈을 가로채서 돈을 번 사람들이 중산층에 앉게 됐으니 문제입니다.
▲이=그런 원인 때문에 요즘사회가「흥청거리면서 엉망」이라는 결과를 낳았지요. 보십시오, 고도성장 이라 해서 흐르는 돈은 피서 행락 이나 소비에 쓰이고 또 투기로 휘말리니 건전한 기반으로 사회를 받칠 힘이 없는 것입니다. 거기서 소외된 사람은 위축감을 느끼고 「나만 가난하다」는 불만을 품게 되지요.

<「자기」속에 웅크려>
▲조=월급쟁이로서 바르게 살자하면서도 어떤 때는 내가 바보가 아닌가 고개를 흔들어 볼 때가 있지요.
나는 셋방살이에서 시작해서 술. 담배 안하고 3년을 모아 조그만 집을 마련했고 또·5년을 더 모아 괜찮은 집을 샀어요. 우리집아이들은『난 죽어도 된장 못 먹겠다』고 소리칠 정도로 살아온 것인데 이것이 과연 정도인가 의심이 들 때가 있어요.
▲이=이 사회가 지금 서로 돈올 벌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니까 더 그렇지요. 중산층이 돈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불안하고, 불안하니까 물건이나 토지를 사둡니다. 그리고 지금수준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또 불안하거든요.
▲조=그렇지만 중류층 봉급자가 늘어나서 점점 그런 기운과는 달리 안정을 찾고있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내 경우만 봐도 12년 전에 직장생활 시작했는데 그때는 봉급수준이 형편없었는데 요즘은 10년 경력 이상이면 봉급으로도 내 집을 갖고 자기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요.
▲이=그러나 의식 양태가 문제죠. 월급쟁이로 부동산 투기할 능력은 없으나 남들이 가는 「바캉스」는 간다,『모르겠다 나만 살고 체면치레하면 그만이다』하고 체념하는 상태로 가고있지 않아요. 사무실에서 내일하고「마이·홈」꾸미는 데에 자기구실을 한정시키니까요.
▲조=옛날에 너무 쪼들리다가 직장월급으로 안정을 찾으니까 밥 먹고 난 뒤 졸음 오는 격이 아니겠습니까?
▲이=글쎄요. 그러나 중간층이라는 것이 도덕적 가치기준의 균형 잡힌 역할로 상층과 하층의 완충지대가 돼야하는데 자기가신이 불안하고 더우기 체념적으로 사회구조에 대해 외면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조=몰론입니다. 위를 올라가고 싶은 욕망은 순수한데 무엇보다 지금의 자신에서 뚜렷하고 엄격한 가치관을 실천하는 것이 중산층이나 봉급 자들의 할 일 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각기 개인적인 것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거대한 사회를 향해 우선 자기혼자의 투쟁으로 맛서 나가면 어느날 그것이 전체의 힘이 될 것입니다. 부정한 일을 저지르는 기업에서 나오는 물건은 일체 사지 않고 뿐만 아니라 이웃에도 그것을 널리 알려서 마치는데 힘이 돼야지요.

<남을 경계하는 심리>
나는 내 양복이고 집에서 쓰는 물건이건 일단 신문에서 지탄받는 짓을 한 회사의 것은 일체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굉장히 어렵지만 좋은 일입니다. 그것이 한 계층의 힘으로 사회발전에 보탬을 줘야합니다.
▲조=투기의 경우도 그래요. 돈 여유 있는 사람이 13평 서민「아파트」를 산다는 것은 한마디로 도둑놈들입니다.
이것은 자유경쟁과는 달라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발벗고 나서서 제재를 가해야 되는데『내가 비겁해진 것이 아닌가』생각도 합니다.
▲이=봉급자들의 약점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조 선생님 같이 개인적인 저항도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은 있으면서 행동을 못하는 것이 어느 한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전체가 기본바탕에서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조=네, 결국 그런데서 거리감을 느끼게되면 우선 남을 볼 때 경계부터 한다는 엉뚱한 부작용도 빚어요.
▲이=지금의 사화분위기가 남을 딛고 일어서겠다는 경쟁, 들고뛰겠다는 불안한 심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특별취재반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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