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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보안 장막’ … 관광객 항의에 "닥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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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천안문 사태 25주년을 맞은 4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 앞에서 경찰관 한 명이 샷건으로 무장하고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베이징 로이터=뉴스1]

4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베이징(北京) 천안문(天安門) 동편 지하도. 25년 전 이날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민과 학생에 대한 중국군의 유혈진압으로 수백~수천 명이 숨진 역사의 현장이다. 광장으로 이어지는 지하도 안에는 300여 명의 관광객이 보안검색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치된 경찰은 9명. 검색대 바로 앞에서 경찰이 40대 인도네시아 화교 여성의 여권 정보를 무선 단말기에 입력했다. 5분을 기다려도 신상 정보가 나오지 않자 그는 여권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경찰이 이번에는 그에게 중국 방문 목적을 물었다. 여행사 깃발을 든 여성 가이드가 “중국인과 단체 여행 중”이라고 거들자 경찰은 “닥치라”며 짜증을 냈다. 20여 분이 지났지만 그는 광장 입장을 거절당했다.

기자가 검색 장면을 찍으려 하자 “사진을 찍으면 연행하겠다”는 경고가 돌아왔다.

 이날 천안문 광장에는 경찰의 휴대 단말기로 신분이 확인되고 몸수색과 휴대품 검색대를 통과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3단계 보안 검색을 통과하는 데 빨라야 5분이 걸렸다. 광장으로 들어가는 6개 입구 모두 철통 보안검색이 이뤄졌다. 뒷줄에 서 있다 입장을 포기한 호주인 프리랜서 사진작가 마이클 앤은 “세계 50여 개국을 방문했지만 이런 경비는 처음”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경비가 예술 수준”이라는 말을 남기고 호텔로 돌아갔다.

 광장은 6중 감시체제였다. 우선 공안 순찰차 3대가 광장을 나눠 돌았다. 2명이 짝을 이룬 군견조는 외부에서 광장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주로 배치됐다. 폭탄 탐지를 위해서다. 비디오 촬영조는 3인 1조. 현장을 촬영해 용의자 검거와 범법 증거로 삼겠다는 것이다. 무장 경찰은 군복과 전투모에 소총을 휴대하고 순찰을 돌았다. 여기에 청바지 차림의 사복 경찰이 관람객들과 같이 움직이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 정도로도 불안했던지 광장 주변에만 50여 대의 경찰차량이 배치돼 있었다. 그야말로 ‘관람객 반 공안 반’이었다.

 천안문 광장만이 아니다. 천안문으로 이어지는 길(長安大街) 40여㎞의 인도에는 100~200여m 간격으로 공안이 배치돼 수상한 행인들을 검색했다. 베이징의 주요 지하철 역 역시 몸수색과 검색대를 통과해야 지하철 탑승이 가능했다. 이날 베이징 보안검색을 위해 동원된 병력과 자원봉사자들만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처럼 삼엄한 경비는 천안문 사태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하는 시위 우려에다 최근 빈발하는 신장 지구 이슬람 세력의 테러를 우려해서다.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의 시각장애인 인권운동가 천광청(陳光誠)은 이날 “25년 전 오늘 천안문 광장 등에서 거대한 악마들이 수백 명의 사람을 죽이고 침묵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천안문 사태 당시 문을 열었던 ‘천안문 민주대학’이 재개교에 들어가 사태 재평가 운동에 돌입했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일 브리핑에서 “1980년대 말 중국에서 발생한 정치적 풍파와 관련, 이미 정부가 (국가 전복을 노린 범죄라는)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며 이 같은 재평가 요구를 일축했다.

베이징·워싱턴=최형규·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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