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아이슬란드|어장은 바로 생명… "고기떼가 둘러싼 바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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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4분의 3이 불모지>
「사거」(Saga=대서사시)는 10세기를 전후해서「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바이킹」의 후예가 남긴 그들 특유의 문학형식이다. 「바이킹」이란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억센 생존에의 투지와는 대조적으로「사거」는 인간의 존재라는 것이 음산한 북구의 바다와 산하, 그리고 몇 대를 거쳐 면면히 이어지는 운명의 굵직한 굴곡 앞에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그 주제로 삼고있다.
비행기가「케플라비크」공항을 향해 하강을 시작하면서 점점 확대되어 시야에 들어온「아이슬란드」의 망은 이 민족이 어째서「사거」와 같은 숙명론적 문학에 그처럼 뛰어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검은 산봉우리의 음산한 분위기는 잠시 지나가는 여행객에게도 침울한 기분을 안겨준다.
땅 면적은 우리 나라의 반이 채못되는 10만3천 평방km이지만 그중 4분의 1만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지역이고 나머지가 불모지다. 이 땅 위에 22만5천명이 살아왔다. 「아이슬란드」사람들은 자기들의 처지를 이야기할 때『「아이슬란드」는 고기떼에 둘러싸인 바위다. 고기를 뺏어 버리면 무엇이 남겠는가?』라고 절박한 호소를 한다.
초목이 자랄 수 있는 기간이 5월에서 9월까지 4개월밖에 안되고 여름의 최고기온이 11도(섭씨)이기 때문에 목초재배가 농업의 전부다. 지하자원도 없다. 그러니까 모든 걸 수입해야되고 그 값을 치를 수 있는 방법은 바다에 득실거리는 고기떼뿐이다.
그러니까 수도「레이캬비크」시 중심가에 몇 군데 공업화 또는 공장선전용 벽화까지 그려『공업으로의 꿈』을 고취하지만 효과는 요원하며 어장보호정책을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잡고 2백 해리 전관수역 설정을 가장 먼저 주장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영국과는 소위「대구」(대구)전쟁도 겪었다.

<어장침해 땐 일전불사>
19세기 과학소설작가「쥘·베른」은『지구중앙으로의 여행』이란 작품에서「아이슬란드」인들이 지극히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자연환경이 워낙 잔혹하다보니 이들을 지배해온 인생관도 퍽 침울하다. 이들의 선조인「바이킹」은 전쟁터에서 죽는 자만이「오딘」신의 곁에 갈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 신도 다른 종교에서와는 달리 영생의 위력이 없다.
절대액수만 따져「아이슬란드」인의 1인당 소득은 영국보다 높은 7천4백「달러」다. 그러나 거의 모든 걸 수입해서 살아야 되기 때문에 실제 구매력으로 보면 영국의 3분의 2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다가 연간「인플레」율이 30%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불만이 컸다.
세계시장이 기침을 하면 한국경제는 감기에 걸린다지만「아이슬란드」의 경우 폐렴증세를 일으키게 되어있다.

<한국수출 백75만불>
한국은 77년에「아이슬란드」에 1백75만「달러」를 수출하고 12만8천「달러」어치를 수입했다. 한국입장에서 볼때 혹자 폭이 거의 14배나 되어 수지맞는 거래처이긴 하지만 절대액이 미미하고 그것이 크게 증가할 가능성도 별로 없어서 큰 기대를 가질만한 수출대상은 되지 못한다.
더구나「아이슬란드」의 업자들은 관례적으로 신용장 개설방식을 거부하고 최소한 6개월 이상의 연불수입을 고집하기 때문에 한국업자들로서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어업국인「아이슬란드」에서 한국제 어망이 상당한 인기를 끌고있다는 점이다. 76년에 1백만「달러」, 77년에 50만「달러」어치의 어망이「아이슬란드」로 들어갔다.
현재「아이슬란드」에는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김태철 씨 부부가 살고있다. 서독에서 광부로 일하다가 3년 전에「레이캬비크」로 이주한 김씨는 조선회사에 근무하고 있는데 수입이 좋고 7년만 더 있으면 시민권이 나오지만 한국에 돌아가 살고싶다고 말했다.

<최후의 순박한 백인>
「아이슬란드」는 백인세계에서 가장 덜 약아빠진 나라임에 틀림없다.
영국시인「W·H·오든」은 10년 전에 쓴『「아이슬란드」로부터 온 편지』라는 여행기에서『우리시대의 현대성이 아직은「아이슬란드」인의 성격을 바꾸지는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아직 천박해지지 않았다』라고 쓰고있다.
기자가「레이캬비크」에 도착하던 날밤 술집에서 만난 한「아이슬란드」인 어부는『영어가 서투르니 종이에 쓰겠다』면서 헌영수증 조각의 뒷면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줬다.
『코리아 씨, 우리는 어디서 온 손님이건 환대합니다. 친구여, 우리 나라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리고는 술 한잔을 사서 기자를 대접하는 것이었다.
「아이슬란드」는 무수한 온천이 있어서 도시난방의 90%가 이 온천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나 라에는 아직 공해가 없다. 수백 년을 두고 얼어온 빙하가 녹아 흐르는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속에서 가꾸어온「아이슬란드」인의 순박한 인간미는 기자가 탄 비행기가「레이캬비크」공항을 떠나 먼지 낀「유럽」의 하늘로 가까와오면서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글·사진=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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