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률 10·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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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상반기 중 소매 물가가 이미 10·3%나 올라 금년 물가 억제선 10%가 무너지고 말았다.
물가가 10·3%밖에 안 올랐으면 걱정도 않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계에서 실감하는 물가 상승률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그러나 성격상 가계 물가보다 훨씬 낮게 잡히는 물가지수에서조차 반년동안에 10·3%의 상승으로 나타났다면 여간 심각한 사태가 아니다.
이러한 물가 상승은 전쟁이나 「오일·쇼크」같은 비상사태를 제외하곤 볼 수 없는 일이다.
금년의 물가 상승은 거의 완전히 국내요인에 기인됐다는데 특색이 있다.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값은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오일·쇼크」 때와는 달리 정책대응만 적절했으면 이토록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데서 최근의 물가 상승이 더 원망스러운 것이다.
이제까지의 정책기조를 볼 때 금년의 물가 상승은 당연한 귀결이라 볼 수 있다.
물가 안정기조를 희생하더라도 고도성장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풍미하고 있는 터에, 어떻게 물가 안정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런 기본인식 아래선 물가 안정이란 애당초부터 불가능한 것이며, 물가정책도 사후 규제식의 단편적 조치밖에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물가가 오를 원천적 요인들은 내버려둔 채 가격 단계에서 아무리 규제해봐도 결국 물가는 오르기 마련이다.
사실 어떻게 하면 물가가 안정되느냐 하는 원리는 누구나 알고 있다.
수급균형을 도모하기 위하여 물량확대와 통화안정을 기하고 또 사회전반의 비능률과 낭비를 제거해야한다.
국내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고 국민경제의 순환을 정상화 해야한다.
이는 가격기구의 활용과 경쟁원리의 도입, 사회정의의 실천을 통해 가능하다.
이러한 경제의 정상화·효율화의 노력을 중단하지 않고 꾸준히 계속할 때 비로소 안정이라는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안정화 노력은 무척 고통스럽고 또 대단한 용기와 인내를 필요로 한다.
때문에 이런 노력은 중단되기 쉽다. 구호로는 안정을 외치면서도 성장의 유혹에 못 이겨 실제는 성장추구의 정책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금년에 15%의 실질성장과 경상수지 균형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 대신 그 대가로 「오일·쇼크」이래 최대의 물가 파동을 치르게 된 셈이다.
「인플레」는 지속성장의 「브레이크」가 될 뿐 아니라 사회의 활력·근면·성실성을 파괴한다.
고도성장의 그늘에 가린 이런 부정적 요소를 너무 과소 평가하려는 경향이 많다.
물가가 반년에 10%씩 오르는 사태는 결코 정상이 아니다.
이런 「인플레」 아래선 대부분의 국민들이 경제성장 자체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어 경제발전을 위한 국민적 「에너지」가 쇠퇴하는 것이다.
물가를 진정시키는 길은 물가의 원리에 충실하는 수밖에 달리 묘방이 없다.
물가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범국민적 「컨센서스」를 확립, 그런 방향으로 모든 정책노력을 집약해야하는 것이다.
특히 정책 당국간의 전시적 실적경쟁, 시책 상충, 시행착오 등을 철저히 제거하여 정책방향의 구심축을 튼튼히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근원적인 노력을 외면한 채 계속 기상천외의 묘수로 물가를 누르려한다면 결과는 백년하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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