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승'의 휴머니즘에 반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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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에 또 하나의 ‘○사모’가 뛰고 있다. 오는 11일 개봉하는 ‘동승’(감독 주경중)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동사모’다. ‘박사모’(박하사탕), ‘파사모’(파이란), ‘번사모’(번지 점프를 하다) 등의 ‘후예’다.

구성원에선 차이가 난다. 주로 젊은층이 모인 ‘○사모’와 달리 ‘동사모’ 의 주축은 30대 이상의 중년이다. ‘동사모’를 이끌고 있는 개그계의 대부 전유성(54)씨, 저명 피아니스트 서혜경(43)씨, 서울 수색성당 유종만(41) 신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소위 총천연색 회장단이다.

전씨는 "지난 7년간 이 고생 저 고생 다해 만든 영화가 '죽은 아이 불알 만지기'식으로 끝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모였다"고 말했다. 흥행에 실패한 좋은 영화를 기억하는 여타 '사모'보다 더욱 적극적인 모임이라는 것. 알음알음으로 모인 회원수가 1천여명을 넘었다고 했다.

예컨대 전씨는 지금까지 일반 시사회에만 네 번 참석해 영화를 알렸고, 서씨는 그와 가까운 사회 명사 1백여명을 불러 별도의 시사회를 열었으며, 유신부는 성당에서 인근 사찰의 스님들과 함께 영화를 감상했다.

'동승'은 어린 시절 헤어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동자승, 성(性)과 불법(佛法) 사이에서 고민하는 젊은 스님, 또 이들을 감싸주는 노스님의 얘기를 따뜻하게 그린 영화. 근래 보기 드문 수채화 같은 작품이다.

이들은 '동승'의 휴머니즘과 한국의 풍경에 반했다고 했다. 전씨는 "완벽한 작품은 아니죠. 시간.제작비 등의 한계가 보여요. 하지만 감동과 유머가 함께 있어요. 어린 스님이 길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 흩날리는 눈발이 감독의 땀으로 비칠 만큼 내용이 절절합니다"고 말했다.

서씨는 "즐겨하는 곡 중에 쇼팽의 '녹턴'이 있어요. 선율은 잔잔하지만 울림은 크죠. '동승'도 그런 영화입니다. 눈물이 핑 돌게 만들어요"라고 밝혔다.

유신부도 "불교영화란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여태껏 자막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뜨지 않은 영화는 '미션'과 '시티 오브 조이' 두 편이었는데, 이번에 세번째 영화를 만났다"고 거들었다.

그들은 특히 섹스와 폭력이 없으면 얼굴을 내밀지 못하는 요즘 극장가에 '동승' 같은 명징한 영화가 나와 반갑다고 했다. 좋은 영화는 신분.직업.종교.이념의 차이를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영화가 너무 착해 보여 요즘 관객과 어울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고 물으니 그들은 "그만큼 세상이 각박해진 탓"이라고 반박했다. 그들은 중년의 책임을 강조했다.

젊은이의 전유물로 간주되는 영화.가요 등에 중년들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문화 기획자도 폭넓은 대중을 상대로 한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MBC 라디오 '여성시대'를 진행하는 전씨는 "요즘 주부들은 몰라보게 달라졌어요. 표현욕이 대단하죠. 그들을 문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시도가 계속돼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유신부=성당에서도 영화 시사회를 정기적으로 열겠어요. 두 분을 초대해 강연.연주회도 열고요. 꼭 오실거죠."

▶서씨=그럼요. 그런데, 신부님, 우선 제 다음 카페에 등록해 주세요, 전선생님도요.

▶유신부=알겠어요. 연주회 땐 친구들과 함께 가죠.

▶전씨=제가 클래식 공연을 기획한 거 아세요? 어린이가 떠들어도 화내지 않는 음악회였죠. 반응이 대단했어요.

▶서씨=너무 재미있겠어요. 다음엔 저도 불러주세요

문화의 저변 확대, 또 문화의 크로스오버는 별다른 게 아닐 것 같았다. 그렇게 만나면서, 얘기하면서 이해를 넓혀가는 일이리라. '동승'의 공헌은 이것 하나로도 충분해 보였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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