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2264)<제자 조연현>|<제58화>문학지를 통해 본 문단 비사-50년대 "문예지 전후"(27)-두 갈래 문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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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 무렵 우리 문단은 한국문학가협회(당시 대표자 박종화)와 자유문학가협회(당시 대표자 김광변)로 양분되어 있었다.
한국문학가협회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6·25동란 전에 발족된 해방이후 최초의 범문단적인 문학단체였고, 자유문학가협회는 부산피난 당시 부산에서 새로 발족된 것이었다.
피난생활 중 문학단체가 새로 조직되어야 할 분명하고도 확실한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찾을 수 없지만, 어쨌든 동란 중에 만들어진 자유문협은 수복 이후에도 그 조직을 유지해 가고 있었고 한국문협이 한국문학상을 제정한데 이어 자유문협은 자유문학상을 재정하고 「자유문학」이란 기관지도 내고 해서 문단은 양분된 상태 속에 있었다.
두개의 문학단체가 양립된 데에는 뚜렷하고 확실한 명분은 찾아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국문협에는 이남출신이, 자유문협에는 이북출신이 많았다는 데서 이상한 느낌을 준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한국문협을 이남파로, 자유문협을 이북파로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문학단체가 남북이라는 출신지역에 기초를 들 수는 없는 것인데 이 우연한 인적성분은 말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었다.
또한 한국문협은 예술원파고 자유문협은 반 예술원파라는 말도 있었다. 예술원회원은 거의가 한국문협쪽 소속이고, 예술원을 반대해온 사람들이 자유문협쪽에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우연한일인 것은 예술원 발족 이전에 이미 두 단체는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문단에 같은 성격의 두 문학단체가 있다는 것은 그 발족의 원인이나 배경은 무엇이든 간에 문단의 화합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고 이것이 문예지에도 작용이 되었다. 「자유문학」 은 자유문협의 정식기관지였기 때문에 자유문협쪽의 표현지가 될 수밖에 없었고, 「현대문학」은 한국문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지만 그 범문단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친한국문협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가하면 「문학예술」은 그 중간적인 인상을 가지려고 애를 썼다. 문예지가 문단적인 의식의 지배를 받는 것은 문예지의 건전한 성장이나 발전에 유해한 것이다.
문예지가 문단적인 표현지가 되면 동인지적인 성질로 독음의 확대와 증가를 어렵게 한다. 「자유문학」지의 그 장기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폐간의 쓰라림을 갖게된 중요한 이유의 하나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문학예술」지의 경우도 비슷한 사정이 아니었을까. 이쪽도 저쪽도 아니라는 이쪽의, 혹은 저쪽의 의식 때문에 스스로를 거세시킨 일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쨌든 한국문협과 자유문협이라는 문학단체의 양립은 6·25사변을 전후해서부터 5·16이 올 때까지 지속된 우리 문단의 명랑하지 않은 한 측면이었다.
그러한 측면의 구체적인 한 예를 아세아재단에의 용지신청 사건 같은 데에서도 볼 수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문화활동을 지원해주는 아세아재단이라는 미국재단이 있었다. 「펜·클럽」대표에게 여비도 보조해주고 화가들에게 화구도 지원해주고 자유문학상을 선정하여 시상도 해주곤 했다. 나는 「현대문학」의 용지지원을 신청했다. 그때 용지지원을 신청한 잡지사는 여러 군데였는데 그 중에는「자유문학」도, 「문학예술」도 폐간된 「문예」의 복간등 그밖에도 여러 군데 있었다.
순문예지에는 두 군데쯤 그 지원이 가능했으므로 어느 잡지가 그 혜택을 받게될지 그것은 오로지 아세아재단자체의 가치판단에 달린 문제였다. 개인보다는 단체가 우선 될 것이고, 영어를 모르는 사람보다는 영어를 잘하는 쪽이 유리하다는 별별 소문들이 다 나돌았지만, 용지의 원조를 받고 못 받고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현대문학」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므로 나는 별로 애타게 바라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원조를 받게된다면 그만큼 우리의 이익이 아닌가.
어느 날 아세아재단에서 연락이 있어 갔더니 젊은 미국사람이 『개인보다는 단체를 우선해야 되지 않겠느냐. 당신은 이남파라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이런 말을 했다.
나도 모르게 약간 흥분한 나는 『문화활동은 단체보다는 개인의 능력이 더 중요하다. 잡지의 경영이나 편집과 같은 것은 더욱 그렇다. 개인의 식견과 양심이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한 단체의 식견이나 양심보다는 문화적인 일에 있어서는 더욱 소중하다. 내가 이남파라면 어느 파도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고 말문을 열었다. <계속> 【조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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