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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쉐량 없애려는 장제스 … 새파랗게 질린 쑹메이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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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호 29면

연합에 성공한 후 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위원장 장제스(앞줄 오른쪽)와 함께 난징의 쑨원 묘소를 참배한 장쉐량(앞줄 왼쪽). 1930년대 초반으로 추정. [사진 김명호]

1928년 6월 10일, 장제스(蔣介石·장개석)가 지휘하는 북벌군 선발대가 수도 베이징에 입성했다. 16년에 걸친 북양정부 시대는 막을 내렸다. 동북을 제외한 전국에 청천백일기가 나부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76>

동북(만주)의 새로운 지배자 장쉐량(張學良·장학량)은 난징의 국민정부 앞으로 전문을 보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통일을 방해하지 않겠다”며 귀순 의사를 분명히 했다. 장제스의 중국 통일은 시간문제였다.

장제스도 장쉐량에게 전문을 보냈다. 일본군에게 폭사당한 장쭤린(張作霖·장작림)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특사 파견을 제의했다. “황망해할 장군을 생각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시국에 함께 인내하고 분투할 사람은 장군밖에 없습니다. 상세한 설명을 드리기 위해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부디 만나 주시기 바랍니다.”

장제스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인 장췬(張群·장군)을 극비리에 동북으로 파견했다. 장췬과 몇 차례 만난 장쉐량은 장제스에게 흥미를 느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이름은 들었지만 별 관심은 없었다. 훗날 당시를 회상했다.

“장제스는 평판이 좋지 않았다. 사람 됨됨이야 어떻건, 남북 통일이 국가의 앞날에 유리하다는 주장에는 공감했다. 동북에 청천백일기를 게양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남들은 믿지 않겠지만 쑹메이링(宋美齡·송미령)이 본처를 버린 장제스와 결혼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두 사람의 결혼으로 전 중국이 떠들썩했을 때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동북군 중에 통일 지지자는 소수였다. 일본 관동군도 만주를 중국에서 분리시키라며 내게 압력을 가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장쉐량은 부인 위펑즈(于鳳至·우봉지)와 함께 베이다이허(北戴河)로 피서를 떠났다. 한번 만나자는 장제스의 전문이 빗발쳤다. 장쉐량은 위펑즈와 의논했다. “당신은 아버지가 정해준 부인이다. 의견을 듣고 싶다.”

쑹메이링과 장쉐량의 부인 위펑즈(오른쪽). 남편들이 손을 잡자 두 여인도 친자매처럼 가까워졌다. 장쉐량이 연금에 처해진 후에도 둘의 관계엔 금이 가지 않았다.

위펑즈는 의외였다. 시아버지 장쭤린은 생전에 “정치는 여자에게 적합하지 않다. 결정적인 순간에 감정에 지배되기 쉽다. 그러다 보니, 국가 대사를 그르친 적이 많았다”는 서태후의 유언을 자주 언급하며 여자들에겐 정치 얘기를 입에 담지도 못하게 했다.

장쉐량이 하도 권하자 위펑즈도 의견을 내놨다. “동북에 청천백일기 게양은 말도 안 된다. 원로 장군들의 반대가 거세다. 이들을 무시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장제스는 흉악한 사람이라고 들었다. 시아버지 상중에 조문편지를 보내고 측근을 보내 호감을 표시했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당신은 아직 나이가 어리니 조심해라.”

장쉐량은 위펑즈에게 고맙다고 말했지만, 행동은 반대로 했다. “장제스의 난징 정부와 연합하지 않으면 일본 관동군의 위협에 시달린다. 장제스의 휘하에 들어갈지언정 일본과 함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장제스에게 베이징에서 만나자는 전문을 보냈다.

장제스는 장쉐량보다 한발 앞서 쑹메이링과 함께 베이징에 도착했다. 중난하이에 여장을 풀자 막료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산시(山西) 군벌 옌시산(閻錫山·염석산)의 주장이 눈길을 끌었다. “장쉐량의 동북군이 건재하는 한 통일은 불가능하다. 난징으로 유인해 설득하자. 불응하면 처형하는 수밖에 없다.” 장제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쑹메이링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날 밤 장제스는 쑹메이링과 함께 중난하이를 산책했다. 장쉐량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며 으쓱해했다. “아직 28세에 불과한 애송이다. 대권을 장악하기는 했지만, 권력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 국가에 대한 충성과 용기는 높이 살 만하다. 그를 이용해 통일의 대업을 이루겠다. 이 기회에 철저히 제거해 버리자는 옌시산의 의견도 일리가 있다. 아무리 어려도 호랑이는 호랑이다.”

쑹메이링이 장제스에게 속삭였다. “옌시산에게 장쉐량은 큰 우환거리다. 우리를 이용해 장쉐량을 제거하겠다는 심산이다. 통일을 위해 장쉐량의 군사력이 필요하다면 둘이 손을 잡아라.” 장제스는 쑹메이링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대답에 대신했다.

다음날 장제스가 장쉐량을 만나러 나가자 쑹메이링은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장제스가 “얘기가 잘되었다”며 싱글벙글하자 가슴을 쓸어 내렸다. 장제스와의 결혼은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장제스는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 본처와 이혼했지만, 장쉐량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남이 되었지만 장쉐량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릴 자신이 없었다. 실제로 장쉐량이 죽는 날까지 그렇게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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