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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인터뷰] 러쉬 공동창업자 버드, 최고경영자 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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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영국 미용품 회사 러쉬의 공동창업자인 로웨나 버드(왼쪽부터)와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 본사의 최고경영자(CEO)인 앤드루 게리가 회사 제품들과 천연재료를 상징하는 모형을 들어 보이고 있다. 포장을 없애고 비누를 치즈처럼 잘라 파는 게 특징이다. [박종근 기자]

서울 성수대교 남단의 한 ‘미용 용품’ 매장에 들어서면 그윽한 향기가 온몸을 감싸 안는다. 향기의 출처는 자르다 만 큰 치즈덩어리처럼 놓여 있는 커다란 비누 덩어리들. 이곳은 핸드메이드 미용용품으로 이름난 글로벌 업체 러쉬(LUSH)의 매장이다.

환경보호와 동물보호를 ‘이윤’보다 더 큰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기업답게 비누는 케이스가 따로 없이 치즈처럼 잘라서 저울에 달아 g 단위로 판다. 일부 제품은 얼음이 가득 담긴 좌판 위에 놓여 있고, 주방처럼 도마와 칼도 보였다. 매장 벽 윗면에는 검정 바탕에 흰 분필 글씨처럼 ‘우리는 어떤 이유, 어떤 방식으로도 동물실험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글귀가 봐 달라는 듯 쓰여 있었다.

 지난 9일 이곳에서 창업자 중 한 명인 로웨나 버드(Rowena Bird·55)와 영국 본사의 최고경영자(CEO)인 앤드루 게리(Andrew Gerrie·50)를 만났다.

이들은 러쉬의 창업 이념과 마케팅 정책을 설명하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방한 중이었다. 버드는 러쉬의 전신인 ‘콘스탄틴 & 위어(Constantine & Weir)’에서 25년 동안 제품을 개발했다. 1994년 동물보호와 친환경이라는 사회적 가치에 뜻을 모은 다른 6명과 함께 지금의 러쉬를 창업했다. 게리는 원래 버드가 개발한 제품을 사서 쓰는 소비자였지만 다른 창업자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해 95년에 합류한 전문 경영인이다.

 - 러쉬의 제품들이 일반 소비자에게 생소하다.

 “우리는 신선한 과일과 채소, 그리고 중세 유럽에서 자연치유적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식물과 꽃을 이용해 화장품을 만들어 왔다. 천연재료를 이용한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매장에서 풍기는 향기는 그 재료들 때문이다. 모든 게 친환경, 동물보호, 천연재료 사용이라는 기본 원칙에서 출발한다. 팜 오일이 들어가지 않은 비누를 세계 최초로 생산했다. 무분별한 산림 벌채의 원인이 되는 팜 오일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 팜 오일을 쓰지 않는 핸드메이드 비누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연간 25만㎏의 팜 오일 사용량을 줄이고 있다. 샴푸바 역시 마찬가지다. 환경을 생각해서 고체로 만들게 되었고 방부제도 들어 있지 않아 사람에게도 좋다.”(버드)

 - 제품보다는 오히려 경영 이념을 앞세우는 것 같다. 어느 기업이든 이윤 추구가 우선 아닌가.

 “환경(Environment), 동물(Animals), 사람(People)이 조화로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게 브랜드 이념이다. 이는 마케팅 전략 차원이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이고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만약 이윤이나 가치 중 하나를 포기하라면 우리는 이윤을 포기할 것이다. 일례로 에센셜 오일에 대한 우리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보통 에센셜 오일은 중간 거래상으로부터 구매를 했는데 문득 이 제품이 정말 순도 100%일까 의문이 들었고, 즉시 다섯 가지 제품을 검사기관에 보냈다.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는데 대부분의 오일이 순도 20% 미만의 혼합 오일이었다. 즉시 공급과 구매를 중단했다. 이윤을 생각하자면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 대신 우리는 직접 재료를 찾아 나섰다. ‘크리에이티브 구매팀(Creative buying Team)’을 만들어 각국을 돌며 성분과 재료를 생산하고 구매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더 득이 됐다. 특히 모든 원재료는 화장품 동물실험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이 때문에 화장품 동물실험이 불가피한 거대한 중국 시장 진출을 포기하는 등 신념을 지키고 있다.”(게리)

 - 어떻게 그런 가치를 내세우게 됐나.

 “회사를 설립하기 전부터 그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그런 가치를 바탕으로 제품이 만들어지고 회사가 만들어진 것이다.”(게리)

 - 기업이라기보다는 환경운동단체나 동물보호단체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기업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공식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우리와 뜻을 함께하거나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런 문제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고 또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특히 러쉬는 매장 쇼윈도를 활용하거나 직접 고객을 만나 친근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중요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더 많은 고객과 함께 이야기하며 해결책을 찾아가고 싶다.”(버드)

-직원들에게 ‘행복을 심어주는 기업’을 지향한다고 들었다.

 “창립 이래로 고수하고 있는 러쉬의 가치 중 하나가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비누를 만든다’는 것이다. 선발 시 그 사람의 심성도 중요하게 고려하고 인터뷰한다. 다소 무겁거나 경직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재미있고 친근감 있게 바꿔보고자 전 직원이 닉네임(별명)을 사용하고 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젠 동료를 부를 때마다 자연스럽게 웃음이 번진다.”(게리)

 -한국에도 창업을 하려는 이들이 많다. 어떤 각오나 생각이 중요할까. 창업 당시 어떤 생각을 했었나.

 "열정이 제일 중요하다. 이게 없으면 어려움을 겪을 때 곧바로 무너져버린다. 러쉬 역시 창업자들이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공동창업이라면 핵심가치의 공유와 팀워크가 중요하다. 서로 다른 구상을 하고 있더라도 가치를 공유한다면 다른 아이디어들이 오히려 득이 된다. 창업 초기에 재고관리가 잘 안 되고 브랜드가 알려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지만 친환경과 동물보호, 정직 등의 가치를 함께했기 때문에 극복 가능했다.”(버드)

 - 제품을 생산·유통하면서 가장 중요시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신선함이다. 94년 러쉬가 탄생하던 때 창업자들이 수퍼마켓에서 오렌지·레몬·계피 등의 신선한 재료를 구입해 비누를 제조했던 것처럼 현재도 이러한 원칙을 고집해 핸드메이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신념을 알 수 있는 대표 문구인 ‘We Believe’에서도 ‘우리는 러쉬 제품의 품질이 좋으며 고객이 항상 옳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신선함이라는 단어에 마케팅 이상의 정직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믿습니다’라는 원칙을 담고 있다.”(게리)

 - 재료구매팀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다 보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 비용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 아닌가.

 “가격은 상대적이다. 우리 제품 대부분의 가격이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든 제품은 공정거래 무역을 통한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사용해 사람이 손으로 직접 만드는 핸드메이드이므로 기계로 대량 생산하는 타사의 제품보다는 비교적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러쉬는 유명 배우와 모델을 앞세운 광고도 하지 않고, 화장품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화려한 포장도 사용하지 않는다. 전 제품의 70%가 비포장이다. 마스크나 보습제를 담는 패키지인 ‘블랙 포트(Black Pot)’ 용기는 100% 분해되는 무독성 물질이다. 과대포장과 같은 방법으로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것은 옳지 못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게리)

 - 제조 공장을 러쉬 키친(KITCHEN·부엌)이라고 부른다는데.

 “자연으로부터 얻은 신선한 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직접 손으로 제품을 만든다는 취지다. 키친이란 단어를 보면 알 수 있듯 모든 제품에는 레시피가 존재한다. 원재료는 영국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고객에게 신선하고 건강한 제품을 보다 빨리 전달하기 위해 제품에 들어가는 과일·채소 등 신선도가 우선인 원료는 각국에서 직접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버드)

 - 한국에서 구입해 활용하는 재료는 .

 “블루베리를 활용한 프레시 마스크를 러쉬코리아 키친에서 제조해 파는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충남 천안의 ‘밝은세상농원’에서 자라는 블루베리로 만들고 있다.”(게리)

 - 재료가 천연이라서 유통기한이 짧아 재고 관리의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로 만든 제품을 지역 소비자가 누릴 수 있게 하는 게 기본이다. 최소 4주 이내에 사용해야 하는 제품이 있을 정도로 유통기한이 짧은 제품이 있지만 대량생산을 하지 않기 때문에 큰 재고 부담은 없다. ”(게리)

글=문병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샴푸가 고체라고?

◆러쉬(LUSH)=1994년 로웨나 버드 등 7명이 공동창업했다. 고체 샴푸바와 같은 독특하고 창의적인 뷰티 제품들을 개발해 왔으며 동물 실험 반대, 과대 포장 반대, 환경 보호 등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기업 윤리와 신념을 알려왔다. 본사는 영국 풀에 있으며 비상장 기업이다. 제품의 평균 가격대는 7.20유로(약 1만원)이다.

 전 세계 51개국 900여 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49개의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러쉬코리아는 지난해 3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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