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새 이리가 탄생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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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리 시에 「천지가 개벽」되고 있다. 시가지가 파헤쳐지고 넓혀지고 또 다듬어지고 있다. 그 위에 고층건물이 세워지며 이리의 모습이 온통 달라지고 있다. 사람끼리 부닥쳐서 걷기조차 어려웠던 너비 8m의 중앙로가 3배가 넘는 너비25m로 확장되는 등 동서남북으로 새 길이 훤히 뚫린다. 「아파트」가 건설된다. 새 역사가 신축된다. 자활촌에 산뜻한 주택이 들어선다.

<혹한 속 공사강행>
이렇듯 눈부시게 이리시가 변모하고 있다. 참화 6개월만에 30년을 앞당겨 건설되는 새 이리의 현장이다.
l천 4백여명의 인명피해, 50여 억원의 재산피해란 엄청난 참화를 딛고 일어선 인간의지의 승리-.
「새이리 건설」에 투입되는 자금만도 1백94억원으로 건설의 규모는 짐작할 수 있다.
이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참사현장인 모현동 지구 이재민 「아파트」건설사업(45억원 투자). 모현동 언덕 위에 건설되고 있는 이 「아파트」는 2만필의 대지 위에 13평형 26동 l천1백80가구분. 지난해 12월5일 착공한 이 「아파트」는 6월30일의 입주를 목표로 19일 현재 전체 공정이 85%. 예정 공정율 9%앞섰다.
「리갈」S형이란 특수공법에 의해 영하 10도 이하의 혹한 속에서도 공사를 강행. 오늘의 공정을 보였다는 건설현장 사무소 관계자들의 자랑이다.
이 밖에 참사현장인 이리역 바로 부근에 있는 창인동 지구에도 17평형 6개동 1백50가구 분, 상가「아파트」2개동(3층)이 건설될 계획이어서 주공이 지난해 지은 어양동의 3백24가구분과 올해 건설계획인 2백가구분을 합치면 「아파트」시민만 l천8백여 가구. 따라서 「아파트」주민이 1만명으로 전체 시민의 10분의 1이나 돼 전국에서도 「아파트」주민 비율이 제일 높은 도시가 될 것이라는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입주 예정자 김영숙씨(36·여)는『이리 시민들은 새 도시 건설의 의욕에 차있다. 우리가 입주할 「아파트」공사가 예정보다 빠르다니 더 없이 반갑다』며 현장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했다.

<산업도로가 관통>
「아파트」공사 못지 않게 도시 변혁을 가져다 줄 대 역사는 5개 간선도로의 개설 및 확장. 이리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남북도로(이리역∼원광대학) 3㎞ 개설과 인북선 포장공사.
또 동서로 관통하는 동서도로 및 중앙로 확장, 배산 도로개설(배산∼이리 공단)등 총 연장 l2㎞의 도로가 25m폭으로 개설, 또는 확장된다. 이들 5개 간선도로 사업은 이리시의 남북간, 동서간 균형 있는 발전은 물론 공단과 역, 역과 대학간의 교통소통을 원활하게 하며 전주∼이리∼군산으로 형성되는 산업권을 바짝 묶는 산업도로로서의 기능을 확충하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이와 함께 이리역 앞 중심상가는 3층 이상 건물 신축 등 고도 이용지구로 지정돼 민간자본 등 26억원이 투입된다.
여기에 새 이리 역사가 건평 9백평, 광장 5천3백평 규모로 건설, 10월말 준공 예정으로 30%공정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정부 공사 외에 집중 피해지역인 이리 역을 중심으로 곳곳에 고층건물이 시공 또는 착공단계에 있어 새 이리의 중심가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올 들어 건축허가 건수가 6백32건으로 예년의 4배, 건축 면적은 8배에 이르고 있다는 시청의 집계. 특히 지난 15일엔 하루에 46건이 접수돼 기록적이었다.
이재민중 사고 당시 전세 입주자로「아파트」입주권 마저 없는 영세민들은 보상금·취로사업비 등을 아껴 자활촌 건설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어 재난 극복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재민 1천5백여 가구 중 자기 집을 찾고 있던 주민이 1천1백 가구. 나머지 4백여 가구는 30만원의 정착금이 고작이었다. 아직 천막촌에 살고 있는 이들은 30만원으로는 전세방 얻기도 힘들어 자칫 푼돈으로 날려버릴 것을 고민해 오다 지난 2월 자활촌을 세우기로 했다. 첫 기공식을 가진 곳이 송학동 「만기 자활촌」.
38가구 주민들은 정착금 8백40만원과 취로 사업비에서 번 돈, 주부식비 절약금 등 2천4백 만원으로 대지 1천2백평을 구입했다. 그러나 건축비가 l억원이나 소요될 것으로 판단, 이의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 끝에 동당 2백만원의 주택자금을 융자받았다.

<무주택 자에도 집>
남자들은 직접 집 짓는데 나가고 여자들은 취로 사업장에서 돈을 벌고 있다. 대지 35명에 건평 16.5평형 집들.
주민 최난구씨(48)는 『우리들의 자활의욕은 눈물겹다. 내집 마련의 꿈에 부풀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전한다.
이에 용기를 얻어 송학동에 38채(송만 자활촌), 변전소 앞에 60채 등의 자활촌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이대로 가면 무주택 4백16가구 중 절반은 집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리시민의 자활 의지는 놀랍기만 하다. 아직까지 보상 소송사건 1건도 없었고 토지 수용령 한번 발동하지 않은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채의석 시장은 자랑한다.
『외형적인 변혁도 중요합니다만 시민 모두의 가슴에 일어난 마음의 변혁, 이것이 곧 새 이리 창조의 원동력이 아니겠느냐』고 배산지구 이재민 대표 배일랑씨는 말한다.
글 남상찬 기자 이근성 기자 사진 김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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