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장학사업 큰 유산 … 아버지는 나의 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지난해 어버이날 김해련 당시 송원그룹 부회장(왼쪽)과 아버지 김영환 회장. 부녀가 함께 보낸 마지막 어버이날이었다. [사진 송원그룹]

‘다른 걱정 없이 공부만 했으면 좋겠다’라는 게 소원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꼭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장학사업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간암으로 투병하다 지난 3월 별세한 김영환 전 송원그룹 회장의 삶이 그랬다. 딸인 김해련(52) 송원그룹 회장은 “아버지, 당신의 이름으로 살겠습니다”라며 김 전 회장을 회고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사람』이라는 책을 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는 사부곡(思父曲)이다. 아버지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지만 주변에 “딸이면 어때. 아들 부럽지 않다”고 말하며 무남독녀를 아꼈다.

 김영환 전 회장은 1934년 경남 김해에서 7남2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 큰형을 병치레로 잃고 실질적인 가장이 됐다. 경남상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상대에 진학했지만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공장에 다녀야 했다. 대학 졸업 후 사촌 형의 사업체를 도왔던 김 전 회장은 마흔이 되던 해인 74년 한국전열화학을 인수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회사가 손익분기점을 넘자 김 전 회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직원 자녀를 위한 사내 장학금 제도를 만든 것이었다. 83년에 당시 회사 자본금이었던 5000만원보다 2배나 많은 1억원을 출연해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한번은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나왔다. 외려 투명한 경영을 인정받았고, 2004년 국세청장 표창, 2005년 재정경제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김해련 회장은 “아버지께선 ‘투명하게 벌지 않은 돈으로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준다는 게 얼마나 못할 짓이냐’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31년 동안 573명의 학생들에게 모두 64억원이 장학금으로 지급됐다. 재단 총기금 규모는 145억원으로 불어났다.

 딸이 가장 닮고 싶은 것은 아버지의 한결같음이다. “평범한 아버지였다면 제가 책을 쓸 용기를 못 냈을 겁니다. 본인만의 확실한 가치관을 가지고 말보다 행동이 앞선 분이셨어요.” 김 전 회장이 사업하는 이유이자 목표였던 장학재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회사 지분 구조가 그래요. 장학재단이 번성하려면 저희 회사가 이익이 나서 배당을 충분히 해야 합니다. 열심히 투명하게 경영해서 아버지의 정신을 지켜야죠.” 회사는 현재 석회석 같은 광물과 산업용 가스 등을 만드는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사실 김 회장은 김영환 전 회장의 딸이기 이전에 이미 성공한 사업가다.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FIT 패션스쿨에서 공부한 것을 발판 삼아 토종 패스트 패션 브랜드인 ‘스파이시 칼라’를 만들었다. 2년 전 송원그룹에 합류했다. 김 회장은 “아버지의 DNA가 내재화돼 있기 때문에 앞으로 ‘아버지라면 이렇게 결정을 내리셨을 거야’ 하는 직관적인 판단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위문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